무더위가 가시고 선선한 가을철 날씨가 찾아왔다. 일교차가 커지는 환절기가 되면 감기몸살을 앓기 십상이다. 38도 이상의 고열, 두통, 오한 등 감기 증상이 유난히 심하다면 ‘뇌수막염’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뇌수막염은 초기 증상이 감기와 비슷하지만 급속도로 병세가 악화하면서 경련, 발작, 혼수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바이러스성 뇌수막염보다 증상이 심각한 세균성 뇌수막염은 일단 걸리면 48시간 이내 사망에 이를 가능성도 있다. 치료하더라도 뇌 손상 등 영구적인 후유증을 남기기도 한다. 뇌수막염은 왜 생기는지, 어떻게 진단하는지, 치료법과 예방법은 무엇인지 알아봤다.
환절기 감기 같은데…고열·두통·오한 심하면 '뇌수막염' 의심을 [이선아 기자의 생생헬스]

○고열·두통에 근육 경직까지


뇌수막염은 뇌와 척수를 둘러싸고 있는 얇은 막에 염증이 생기는 것이다. 염증이 생기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바이러스성 뇌수막염은 엔테로바이러스 등 바이러스가 코와 입을 통해 우리 몸에 들어와 염증을 일으키면서 나타난다. 뇌수막염을 발병시키는 바이러스는 대부분 5세 미만 영유아를 노리지만, 성인이 감염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몇 년 전에는 혜리, 고경표 등 연예인이 바이러스성 뇌수막염을 앓으면서 이목을 끌기도 했다.

수막구균, 폐렴사슬구균, 황색포도구균 등 세균이 수막에 침입하면서 발병하는 세균성 뇌수막염은 바이러스성보다 증상이 심각하다. 특히 수막구균과 폐렴사슬구균은 면역력이 좋지 않은 영유아뿐 아니라 일반 성인에게도 염증을 일으키는 경우가 빈번하다. 신경계 수술을 받은 뒤 합병증으로 황색포도구균에 감염돼 뇌수막염이 발병하는 경우도 있다. 알코올중독자나 영양 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을 잘 감염시키는 리스테리아균, 환절기 독감의 주범인 B형 인플루엔자균 등도 세균성 뇌수막염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꼽힌다.

뇌수막염에 걸리면 고열과 두통, 오한 등이 나타난다. 감기와 증상이 비슷하지만 통증은 더 심하고, 갑작스럽게 발병한다. 염증이 수막뿐 아니라 뇌에도 번지면 경련, 발작이 동반되고, 심하면 의식을 잃기도 한다. 뇌수막염 환자 중 30%는 목 근육이 경직되면서 머리를 앞으로 구부리기 힘든 ‘경부강직’이 나타나기도 한다.

세균성 뇌수막염은 24~48시간 안에 사망에 이를 정도로 치명적이다. 뇌수막염 환자 중 사망자 비중은 10~15% 정도로 높은 편이다. 세균 종류에 따라선 사망률이 최대 80%(그람음성간균)까지 높아지기도 한다. 특히 수막구균에 의한 뇌수막염은 감염력도 높다. 최준용 연세대 의대 교수팀이 2018년 연세대 신입생 중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 332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3월에 2.7%였던 수막구균 보균율이 3개월 만에 11.8%로 늘어났다.

○생존자 4명 중 1명도 뇌손상 후유증


뇌수막염 증상이 나타나면 병원에 가서 ‘뇌척수액 검사’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 뇌막과 뇌척수 사이를 채우고 있는 액체를 뽑아 뇌수막염을 진단하는 방식이다. 환자가 옆으로 웅크리고 누운 상태에서 등 부분에 가늘고 긴 바늘을 찔러 뇌척수액을 채취한다. 채취한 뇌척수액을 분석해 백혈구 수치가 증가하거나 당 수치가 감소하면 뇌수막염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 뇌척수액을 정밀 분석해 어떤 종류의 세균과 바이러스 DNA가 있는지 확인하기도 한다. 이 밖에도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을 통해 뇌수막염 여부를 알 수 있다.

바이러스성 뇌수막염을 진단받으면 해열제 등으로 증상을 완화하면 된다. 바이러스성 뇌수막염은 특별한 치료가 없어도 대부분 2주 안에 저절로 회복되기 때문이다. 단 바이러스가 뇌까지 침범한 경우에는 항바이러스제로 치료해야 한다. 드물게는 수개월간 만성 두통, 전신 피로감 등 후유증이 남기도 한다.

세균성 뇌수막염에 걸렸다면 즉시 항생제를 투여해야 한다. 초기에 치료 시기를 놓쳤다간 치사율이 급격히 상승할 수 있다. 염증을 줄이기 위해 스테로이드 치료를 병행하기도 한다. 세균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10일 이상 꾸준히 치료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후유증도 상당하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세균성 뇌수막염 생존자 4명 중 1명은 뇌 손상으로 인한 지적 능력 감소와 기억 장애, 난청, 어지럼증, 보행 장애 등 심각한 후유증을 앓았다.

○세균성 뇌수막염은 백신으로 예방


부작용이 심각한 만큼 뇌수막염은 예방이 중요하다. 세균성 뇌수막염은 백신으로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도 만 16~23세 청소년 및 성인에게 수막구균 백신 접종을 권고하고 있다. 국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4가 수막구균 백신은 사노피 파스퇴르의 ‘메낙트라’와 GSK의 ‘멘비오’다. 메낙트라는 생후 9~23개월 영아는 두 번, 만 2~55세는 한 번 접종하면 된다. 멘비오는 생후 2~6개월 영아는 4회, 7~23개월은 3회 투여한다. 그 이후부터는 한 번만 접종하면 수막구균 감염을 예방할 수 있다. 그 밖에 폐렴구균, B형 인플루엔자균도 국가 예방접종을 통해 백신을 맞을 수 있다.

백신을 맞았더라도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현재 국내에서 사용되는 4가 백신은 일부 혈청군만 예방 가능하고, 예방률도 100%는 아니다”며 “수막구균 감염이 의심되면 예방접종 유무에 관계없이 빠른 진단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바이러스성 뇌수막염은 백신이 아직 없다. 다른 바이러스성 질환처럼 손 씻기, 음식 익혀 먹기, 물 끓여 먹기 등 위생을 철저히 관리하는 방법이 최선이다. 유병욱 순천향대서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국내에선 뇌수막염에 대한 인식이 아직 낮지만, 세계보건기구(WHO) 등에선 뇌수막염의 높은 치명률을 감안해 예방을 강조하고 있다”며 “특히 기숙사 등 단체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전파력이 강한 수막구균 뇌수막염에 대해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