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 유족이 수천억원을 기부한 감염병전문병원 건립 사업이 예산 삭감 논란에 휩싸였다. 내년도 예산안에 병원 부지대금을 비롯해 설계·시설부대비 등 1629억원이 반영되지 않아서다. 정부는 “예산 삭감은 삼성 기부금과 무관하다”고 해명했지만, “민간기업의 기부금을 받은 만큼 나랏돈을 덜 투입하면 기부 취지가 퇴색된다”는 비판이 의료계에서 나오고 있다.

정부가 31일 발표한 ‘2022년 예산안’에 따르면 정부는 국립중앙의료원의 감염병전문병원 건립 등에 2108억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중앙의료원 요청액(3737억원) 중 43%(1629억원)가 반영되지 않았다. 빠진 금액의 대부분(1610억원)은 부지매입비다.

정부는 지난 4월 삼성으로부터 코로나19 감염병 인프라 구축 용도로 7000억원을 받았고, 이 중 5000억원을 중앙감염병전문병원 설립에 쓰기로 했다. 중앙의료원은 서울 방산동 미군 공병단 부지로 신축 이전하면서 감염병전문병원도 이곳에 함께 짓기로 했다. 그런데 부지매입비를 비롯해 설계비 등이 반영되지 않자 “삼성 기부금이 들어왔다고 예산을 깎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예산을 삭감한 건 부지매입비를 내년에 반영해도 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부지매입비가 중앙의료원 요청보다 적게 잡혔지만 그만큼 내년 예산에 더 많이 반영하면 된다”며 “기한인 2023년까지 국방부에 부지 대금을 완납하면 문제가 없다”고 했다. 노정훈 복지부 공공의료과장은 “(부지매입비를) 2023년도 예산 편성에 추가하거나 필요하다면 국회 심의 과정에서 증액할 수도 있다”고 했다. 삼성 기부금이 사업비에 포함된 후 사업계획을 재검토하느라 건립 속도가 더뎌지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사회경제적으로 긴급하게 필요할 경우 재검토를 면제할 수 있다. 면제가 가능한지 재정당국과 협의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는 내년에 사용할 코로나19 백신 9000만 회분 구매를 위해 약 2조6000억원을 편성했다. 이 중 2조4079억원은 화이자·모더나 등 해외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백신 8000만 회분을 구매하는 데 사용한다. 나머지 1920억원은 SK바이오사이언스 등 최근 임상 3상에 진입한 국산 백신 1000만 회분 선구매에 투입된다.

정부는 미국 제약사 머크가 개발하고 있는 경구용 코로나19 치료제 2만 명분 구입에도 417억원을 편성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