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셴룽 총리 "앞으로 미국의 행동이 인식에 영향 줄 것"
아프간 사태로 '미 신뢰도'에 의문…홍콩매체 "싱가포르 딜레마에 빠져"
동남아 '세몰이' 나선 美부통령에 '경고장' 날린 싱가포르(종합)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가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을 앞에 두고 '앞으로 미국이 어떻게 하는지 보겠다'라고 경고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도망치듯 철수하는 모습을 보고 동맹국 사이에서 '미국이 끝까지 우릴 지킬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이는 상황에서 '중국 뒷마당'으로 미국에 전략적 중요성이 큰 싱가포르의 총리가 대놓고 경고장을 날린 모양새다.

리 총리는 지난 23일 해리스 부통령과 회담한 뒤 공동기자회견에서 '아프간이 탈레반에 함락된 일이 미국 대외정책 기본전제 신뢰도에 영향을 줬느냐'라는 질문에 "앞으로 미국이 무엇을 하는지가 (우리) 지역을 향한 미국의 헌신과 결의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그는 "각국은 때때로 계산을 다시 한 뒤 입장을 조정한다"면서 "이 과정이 부드럽게 이뤄질 수도 있지만,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으며 엉망이 되면서 바로잡기까지 시간이 들 수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리 총리는 다른 질문에 대한 답변에선 "아프간 이후 장기적으로 중요한 것은 미국이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위치를 어떻게 재정립하는지다"라면서 "이는 미국의 글로벌 우선순위와 전략적 의도에 대한 각국의 인식을 정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로이터 등이 전했다.

리 총리의 발언은 싱가포르도 '미국이 하는 것'을 봐서 기존과 셈법을 달리해 관계에 변화를 줄 수 있다고 경고하는 것으로도 풀이될 수 있다.

싱가포르는 미국과 교역이 활발한 국가다.

다만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악화하자 중국과 가까워지면서 양국 사이 '중립'을 유지하는 방안도 모색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와 관련해 24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미중 갈등으로 그간 양대국 사이에서 중립 입장을 취해온 싱가포르가 딜레마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싱가포르는 중립을 모색하지만 역내 미국의 주둔을 지원하고 있고 중국은 이를 잘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문은 해리스 부통령이 동맹 강화를 위해 26일까지 싱가포르와 베트남을 찾는 동남아 순방길에 오르자 중국 관영매체와 함께 많은 누리꾼들도 공격에 나섰다고 전했다.

특히 리 총리가 미국에 경고장을 날린 이후부터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 등에서는 해리스 부통령을 향해 "왜 아프가니스탄에 가지 않냐", "왜 중국의 뒷마당으로 향했냐"는 반응이 이어졌고, 싱가포르를 향해서는 "중국의 형제가 되고 싶냐, 아니면 미국의 개가 되고 싶냐?"는 댓글 등이 나왔다는 것이다.

전날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사설에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군과 관련해 '맹우(盟友·어떤 일에 대해 서로 굳게 맹세한 친구) 포기의 상습범'이라고 견제구를 날렸다.

싱가포르 국립대 충자이안 교수는 일부 매파 누리꾼과 중국 매체가 미국과 협력을 강화하려는 싱가포르의 노력에 화를 낼 수 있다면서도 "핵심은 중국 고위 관리들도 그렇게 생각하느냐인데 예측이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싱가포르는 국익을 위한 최선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중국의 감정도 고려해야 하지만 궁극적으로 누구도 중국이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며 어떤 반응을 할 것인지를 통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중국사회과학원의 미국 전문가 루샹(陸翔)은 "싱가포르는 미국이 동남아에 계속 주둔하길 바라지만 미중 경쟁이 전략적 충돌로 이어질까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충돌이 발생할 경우 싱가포르 같은 나라들은 생존의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며 "리 총리의 발언은 그러한 싱가포르의 딜레마를 알 수 있게 해준다"고 지적했다.

CNN방송은 "해리스 부통령의 순방은 미국이 동맹국을 위해 헌신할 것이라고 외국 지도자들에게 재확인시켜줄 기회라는 점에서 중요하다"면서 "특히 베트남에서 해리스 부통령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9·11 시대 분쟁'을 끝낸 뒤 우선순위를 높이길 원하는 아시아에 초점을 유지하고자 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방송은 아프간 사태로 '1975년 사이공(현 베트남 호찌민) 함락'이 재소환되고 있다고도 짚었다.

동맹국들이 해리스 부통령 앞에서 '미국을 믿어도 되느냐'라고 묻는 상황이 나올 것으로 순방 전부터 예상돼왔다.

해리스 부통령은 중국과 동남아국가들이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남중국해를 가지고 '중국견제'와 '동맹결속'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려는 모습이다.

그는 이날 싱가포르를 떠나기 전 연설에서 "중국은 계속 강압하고 겁을 주며 남중국해 대부분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중국의 행위는 규칙에 기반을 둔 질서와 각국의 주권을 지속해서 약화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이런 위협을 받는 동맹국 및 협력국과 함께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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