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노조, 파업 또는 단체이직 의결…운항 멈출시 수출기업 타격 불가피

국내 최대 컨테이너 선사인 HMM의 해원연합노조(선원 노조)가 23일 창사 이래 첫 파업을 의결하면서 국내 초유의 물류대란이 곧 현실화할 조짐이다.

실제 파업으로 이어질 경우 사상 최대 실적과 최대 8년간의 임금 동결에도 채권단 관리를 이유로 임금 인상을 반대한 HMM 사측과 채권단인 산업은행은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HMM, 사상 첫 파업 결의에 물류대란 '눈앞'…"산업은행 나서야"
◇ 90% 넘는 찬성률로 파업 의결…사측·산은 태도 바뀔까
HMM 해원노조에 따르면 지난 22일 정오부터 24시간 동안 전체 조합원 45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쟁의행위 찬반투표는 투표자 대비 92.1%의 찬성률로 가결됐다.

해원노조는 파업 투표 가결에 따라 오는 25일 사측에 단체 사직서를 제출하고, 스위스 해운업체 MSC에 단체 지원서를 낼 계획이다.

MSC는 한국 선원들을 대상으로 2~3배의 연봉을 제시하며 채용작업을 해왔다.

아울러 부산항에 입항하는 선박에 대해선 선원들이 집단 하선하고, 하역인부와 작업인부의 유전자증폭(PCR) 검사 증서 제시 전까지는 작업자의 승선도 거부할 예정이다.

선원법상 운항 중이거나 외국에 있는 항구 선원들은 단체행동권이 제약되는 것을 고려할 때 사실상의 파업인 셈이다.

다만 해원노조는 곧 진행될 육상노조(사무직 노조)의 파업 투표 결과를 보고 함께 쟁의행위에 나설 수 있다고 전했다.

또 사측이 전향적 안을 제시할 경우 교섭을 이어갈 가능성도 열어뒀다.

해원노조가 사실상 사상 첫 파업을 결의하면서 사측과 채권단인 산업은행이 태도 변화를 보일지 주목된다.

노측은 그동안 진행된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교섭에서 임금 25% 인상과 성과급 1천200%를 요구했고, 사측은 여러 번의 조정을 통해 임금 8% 인상과 격려금 300%, 생산성 장려금 200%의 수정안을 제시했다.

이에 노조는 중앙노동위원회 마지막 조정에서 임금 8% 인상과 격려금 800%까지 요구 수준을 낮췄지만, 사측이 이를 거부하면서 조정 중지에 이르렀다.

사측이 제시한 생산성 장려금이 사실상 격려금인 것을 감안하면 양 측은 격려금 300%를 두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사측과 산업은행은 HMM에 3조 원이 넘는 공적자금이 투입돼 큰 폭의 임금인상은 어렵다며 계속해서 노조와 협상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관할부처인 해양수산부가 현 사태 해결을 위해 '수출입물류 비상대책 태스크포스(TF)'까지 구성하는 등 위기감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사측과 산업은행이 하루빨리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사측과 산업은행은 선원들의 단체 사직이 압박 수단일 뿐 현실화하기 어렵다며 과소평가하고 있다"면서 "한국 선원들의 우수성을 아는 해외 선사로부터 계속 스카우트 제안이 오고 있어 (선원들이) 무더기로 빠져나갈 가능성도 크다"고 우려했다.

HMM, 사상 첫 파업 결의에 물류대란 '눈앞'…"산업은행 나서야"
◇ 물류대란 '눈앞'…"산은, 한진해운 때도 가만있더니…"
문제는 HMM이 파업에 돌입하거나 인력이 대규모 이탈할 시 수출 물류대란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현재 HMM은 지난달 기준 아시아-유럽과 아시아-북미 노선에서 7%에 달하는 시장점유율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에 더해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가 지난 20일 사상 최고치인 4천340.18을 기록하고, 최성수기인 3분기를 맞아 물동량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HMM이 운항을 멈춰버리면 타격은 수출기업이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

앞서 국내 1위이자 7위인 한진해운이 파산하자 2016년 초 105만TEU에 달했던 한국 선복량은 2016년 말 46만TEU로 급감했고, 국내 기업들은 극심한 물류난을 겼었다.

현재 85만TEU의 선복량을 보유 중인 HMM이 운항을 멈추면 혼란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이에 25%의 지분으로 HMM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산업은행에 비난의 화살이 쏠리고 있다.

HMM 임직원들이 채권단 관리 아래 임금 동결 등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치며 회사를 지켜냈지만 산업은행이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 잇속만 차리고 있다는 비판이다.

특히 산업은행이 최근 전환사채(CB) 권리행사로 2조4천억원에 가까운 시세차익을 확보해 공적자금을 회수했고, 현재까지 몇천억원에 달하는 이자를 받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비난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2016년 9월 산업은행을 포함한 채권단이 지원을 포기하면서 한진해운이 파산한 점을 거론하며 산업은행이 국내 물류대란을 야기하고 있다는 주장까지 제기된다.

이에 대해 산업은행은 "임단협 이슈는 노사간 해결할 문제이고, 산업은행이 개입할 수 없다"라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해운전문가인 전준수 서강대 명예교수는 "HMM이 초대형선 20척으로 지금 위치까지 오르게 된 것은 과거 현대상선과 HMM 경영진, 직원들의 노력이 컸다"면서 "산업은행이 공정함의 차원에서도 노조의 주장을 받아들여줘야 한다고 본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