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준공한 서울 용산구의 한 아파트에선 6개월째 입주자대표회의(입대회)와 입주민들이 갈등을 겪고 있다. 입주민 의사를 묻지 않고 입대회 회장과 일부 동대표가 독단으로 아파트 관리업체를 선정했다는 논란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입주민 절반 이상이 입대회 선거를 총괄하는 선거관리위원회에 입대회 회장 해임을 요구하는 동의서를 제출했음에도 해임 투표는 열리지 않았다. 입주민 A씨는 “입대회는 입주자를 대표하는 곳인데 주민 과반수의 동의가 있어도 해임 투표 자체를 못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전국 아파트 곳곳에서 입대회와 주민 간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입대회가 관리비를 집행·운영하는 과정에서 입주민과 마찰을 겪는 곳이 대다수다. 일부 단지에선 이견을 좁히지 못해 주민들이 입대회를 상대로 법적 소송을 제기하기도 한다. 입대회가 관리비 집행, 사업계획 승인 등 막대한 권한을 쥔 만큼 “입대회 제도를 보다 투명하게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민 원해도 해임 못해…'언터처블' 입대회

관리비 늘면서 입대회 권한↑

22일 국토교통부의 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전국 공동주택 가구는 2016년 1월 840만 가구에서 올해 1월 1034만 가구로 5년 새 20% 넘게 늘었다. 2016년 16조6700억원이던 전국 공공주택 관리비는 지난해 21조7500억원으로 증가했다. 입대회 운영비도 같은 기간 952억4900만원에서 1261억3800만원으로 늘었다.

입대회는 입주자를 대표해 꾸려진 자치 의결기구다.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라 선출된 아파트 동대표들로 이뤄진다. 관리비 집행을 위한 각종 의사결정부터 시설물 보수 교체, 주차장 유지 기준 마련, 관리업체 선정 등 아파트 관리 대부분 사안을 입대회가 관여한다. 입대회는 관리비의 일정 비율을 운영비로 떼어 쓰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는 “아파트별로 커뮤니티 시설이 늘다 보니 입대회 입김이 갈수록 세지고 있다”며 “입대회 운영비 상한선은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아파트 관리 규약에 따라 지출이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입대회의 권한이 크다 보니 이를 둘러싼 입주민들의 세력 다툼이 잇따라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경남 양산의 한 아파트 단지에선 입대회를 꾸리기 위한 동대표 선거에서 B씨 등 5명이 새 동대표에 당선됐다. 하지만 입대회 선거를 주관하는 선관위는 “선거 기간 중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이유로 이들에게 당선 무효 처리를 내렸다. 이에 B씨 등은 “전 입주자대표회의와 선관위는 과거 비리가 밝혀질까 두려워 당선을 무효화한 것”이라며 선관위 처분에 대한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결국 오는 24일 울산지방법원에서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끼리 재판을 벌이게 됐다.

입대회 해임도 까다로워

입대회를 견제할 수단은 부족하다. 경기 안양시의 1800가구 규모 아파트에 사는 C씨는 지난달 입대회에 회의 녹화본을 보여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입대회 측이 “동대표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녹화본 공개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 아파트 입대회 운영비는 2016년 827만원에서 2020년 1577만원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관리비 유용 등 비리 의혹이 제기되더라도 입주민이 입대회 임원을 해임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에 따르면 입주민 10분의 1 이상이 투표에 참여해 과반수가 찬성하면 입대회 회장을 해임할 수 있다. 하지만 입주민 동의를 얻더라도 선관위 판단에 따라 해임되지 않는 곳이 많다. 권형필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는 “선관위가 아파트 관리규약상 해임 사유가 아니라고 판단하면 입주자는 해임 투표조차 시작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지자체마다 공동주택 관리규약 준칙을 두고 있지만 강제성이 없는 ‘권고 사항’으로, 지자체도 입대회와 입주자 간 갈등에는 손을 놓고 있다. 김예림 법무법인 정향 변호사는 “현행 제도에선 입대회를 관리 감독할 시스템이 없다”며 “입주민에게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견제장치를 마련하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강호 기자 callm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