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101호' 순찰정장 故 이종우 경감, 민간인 구하려다 순직
유족 "고귀한 희생 헛되지 않게 사고 원인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의암호 참사 1년] ③살기 좋은 나라를 꿈꿨던 '천생 경찰'의 희생

"다시 그런 상황이 생기더라도 아버지는 출동하셨을 거예요.

배를 돌려서 혼자 살아남으셨더라면 매우 괴로워하시고 힘들어하셨을 거예요…"
지난해 8월 6일 오전 11시 2분께 고(故) 이종우(55) 경감은 의암호 경찰 순찰정인 '강원 101호'를 몰고 인공 수초섬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결박에 실패한 수초섬은 의암댐 상부 500m 지점까지 떠내려갔다.

수초섬 관리업체 직원이 탄 고무보트가 수상 통제선 아래로 내려가자 이 경감은 고무보트를 구하려고 순찰정을 움직였다.

그러나 그 순간 팽팽해진 수상 통제선이 튕기면서 순찰정을 때렸고, 순찰정은 뒤집히고 말았다.

이 사고로 실종된 이 경감은 이틀 뒤 춘천시 서면 덕두원리 등선폭포에서 상류로 2㎞ 떨어진 한 사찰 앞 북한강 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경감의 아들(27)에 따르면 이씨는 사고 3일 전까지 일기를 썼다.

'일기를 써야 하루를 반성하고 내일을 계획한다'는 평소 그의 말 따라 일기장에는 가족들에게 터놓지 못했던 이 경감의 일상이 기록돼있었다.

[의암호 참사 1년] ③살기 좋은 나라를 꿈꿨던 '천생 경찰'의 희생

8월 3일 '금년 들어 가장 많은 비가 내린다.

천둥 번개도 치고 요란하다.

의암호에는 부유물(쓰레기)들이 떠다니고 있다.

장마도 계속되고, 코로나도 계속되고…' 일기를 끝으로 그의 일기장은 더는 채워지지 않았다.

이 경감은 1998년부터 소양강과 의암호 등지에서 경찰 순찰정 승선 업무를 시작해 잔뼈가 굵은 베테랑으로 동료에게 신망이 두터우면서도 선박 운영에 관해서는 원칙주의자였다.

경찰 순찰정 업무를 전문적으로 하기 위해 해기사(소형선박 조종사) 면허까지 취득했다.

가족들이 순찰정을 타보고 싶다고 해도 "민간인은 탈 수 없다"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장성한 두 아들이 팔씨름을 한 번도 이겨보지 못했을 정도로 자기관리에 엄격했다.

50대 중반에도 불구하고 체력 검정에서 30대 초반 직원들을 누르고 모든 종목에서 만점을 받을 정도였다.

"사람들이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영웅까진 아니더라도 사람을 구하려고 최선을 다하셨다는 것을, 그런 경찰이 있었다는 것을요…"
[의암호 참사 1년] ③살기 좋은 나라를 꿈꿨던 '천생 경찰'의 희생

이 경감은 경찰 제복을 입은 29년간 매사에 솔선수범하고 성실했던 '천생 경찰'이었다.

상자 안에 고이 모아둔 각종 표창장과 훈장이 가족들도 몰랐을 만큼 많을 정도로 비록 큰 업적은 아닐지라도 자신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묵묵히 큰일을 했다.

간 질환을 앓는 고등학생이 사라졌다가 119구조대에 의해 발견됐을 때, 더 일찍 찾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며 미안해했다.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시민을 구조했을 때는 "죽게 놔두지, 왜 구했느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으나 이 경감의 희생정신은 흔들림이 없었다.

이 경감이 일기장에 적은 꿈은 '범죄도 없고, 예절 바르고, 행복하고 살기 좋은 나라'였다.

이 경감의 가족들은 그를 포함한 희생자들이 왜 사지로 내몰렸는지 아직 의문을 품고 있다.

위험한 상황에서 상부의 지시 없이 수초섬 결박 작업이 가능했는지, 실제로 작업 철수 지시가 언제 있었는지, 기간제 근로자들은 왜 동원됐는지, 춘천시 재난 안전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했는지 등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아들 이씨는 "왜 무리한 작업이 이뤄졌는지 명명백백하게 밝혀내야 재발 방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년이 됐음에도 책임자에 대한 아무런 처벌이 이뤄지지 않은 점에 대해선 "경과 과정을 유가족들에게 알려준다면 이해하고 기다릴 수 있을 것"이라며 "아버지의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으려면 두 번 다시 이런 사고가 일어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춘천시에서 추모수 식재 당시 이 경감은 빠지는 등 시민으로서의 대우나 지원은 부족했음을 속상해하며, "아버지도 경찰이시기 전에 춘천시민이셨다"며 시에 합당한 조치를 촉구하기도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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