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LG, 모태 '구인회상점' 이름 지켰다...法, '상표 콜렉터'에 "사용 불가"
복흥상회, 아도서비스, 부림상회, 박승직상점, 그리고 구인회상점….

다소 생소한 이름들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국내 대기업들의 '모태'가 된 가게라는 것. '복흥상회'와 '아도서비스'는 모두 현대가(家)와 관련 있다. 부림상회는 대림그룹의 시초로 꼽힌다. 1890년대 문을 연 박승직상점은 두산그룹의 효시다. 구인회상점은 LG그룹이 출발한 곳이다.

차이점도 있다. 바로 일반인이 '상표 등록'을 할 수 있는지 여부다. 이들 상호는 각 그룹과 관계없는 한 사람이 상표 등록을 마쳤다. 독점적으로 사용할 권리를 갖게 된 것이다. 예외도 있었다. '구인회상점'에 대해선 상표 등록이 거절됐다. 대중에게 잘 알려진 고인의 이름이 사용된 경우, 상표 등록을 할 수 없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오면서다.

法 "'구인회' 고인 이름 사용, '명예훼손' 여지"

2일 특허법원에 따르면 법원은 지난달 6일 일반인 명 모씨가 '구인회상점' 상표 등록 출원 거절에 불복해 낸 항소심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특허심판원이 상표 등록을 거절한 심결을 유지한 것이다. 특허심판원은 특허 관련 분쟁에서 사실상 1심 법원 역할을 한다. 이 판결은 지난달 30일까지였던 대법원 상고 기간이 지나면서 확정됐다. 소송에는 LG가 피고(특허청장)의 보조참가인으로 참가했다.

구인회상점(사진)은 LG그룹의 창업주인 고(故) 구인회 회장이 경남 진주시 중앙시장에서 처음 사업을 시작한 포목점 이름이다. 1931년부터 9년여간 사용됐다. 이후 구 창업주는 '조선흥업사' '락희화학공업사' '금성사' 등의 상표를 사용하며 사업을 키웠다.

특허법원은 구인회상점 이름을 LG와 관계없는 일반인이 상표로 등록하는 것은 고인에 대한 명예훼손 여지가 크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동일한 명칭에 한자어도 같기 때문에 이를 사용할 경우 LG의 고인에 대한 추모를 방해할 수 있다"며 "저명한 고인의 명성을 떨어뜨려 명예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판시했다.

LG와 관계없는 사람의 구인회상점 상표 등록이 소비자를 속이는 행위가 될 수 있다고도 판단했다. 재판부는 "통상 국내 대기업은 창업주의 이름 등을 활용해 사회적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LG에서도 구인회 회장의 호를 딴 재단과 학교가 활동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명씨가 해당 상표를 등록하면 LG그룹이 이후 해당 상표를 사용할 수 없다. 이 같은 상표 출원은 사회적 타당성이 현저히 결여된다"고 덧붙였다.

'경일상회' '박승직상점' 다른 곳은 왜

구인회상점의 상표 등록을 신청한 명씨는 LG그룹 외에도 다른 대기업들의 모태가 됐거나, 창업주와 연관이 있는 상당수 상점의 명칭에 대해서도 등록을 마친 상태다. 그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처음 근무한 쌀가게 '복흥상회'를 비롯해 첫 사업장이었던 '경일상회', 현대자동차의 기원이 된 정비소 '아도서비스'에 대한 상표권을 획득했다. 목재소로서 대림그룹의 기원이었던 '부림상회', 두산그룹의 시초인 '박승직상회'에 대한 상표권도 갖고 있다. 그는 이 이름들을 실제로 사용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허심판원과 특허법원은 '저명도'에 따라 이들 상표 등록에 각기 다른 판단을 내렸다. "특정 인물과의 관련성을 얼마나 인지하는지를 고려했다"는 설명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심판관들은 포털사이트 검색이나 뉴스, 블로그, 카페 글 등을 조사해 수치화했다.

실제 특허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인터넷 포털사이트인 다음에서 'LG 구인회'를 검색할 경우 뉴스 약 7660건, 블로그 약 9210건, 카페 게시글 약 1만100건 등이 검색된다"(2020년 1월 28일 기준)고 밝혔다. 2019년 진주시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구인회상점 복원 사업을 추진하고, 이를 LG 측과 협의해 진행한다고 밝힌 점도 참작했다.

한 대형로펌의 지식재산권 전문 변호사는 "통상의 상식에 따르면 '구인회'가 LG그룹과 관계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가 매우 많다고 볼 수 있다"며 "똑같이 대기업 창업주의 이름을 사용하더라도, 대중에게 알려진 정도에 따라 상표 출원 허가 여부가 갈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안효주 기자 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