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절차 전자문서법 연내 제정 전망…증거관리 개선 전망
피신 조서·증거물 즉시 등록 및 관리기록 의무화 필요
[디지털 수사·재판] ②수사정보망 개방으로 투명성 기대
검찰·경찰의 수사 단계부터 재판까지 증거자료와 관련 서류를 전자화해 공유하는 형사 전자소송 시스템 구축이 속도를 내고 있다.

형사 전자소송은 검·경의 수사정보망 일부를 법원과 피고인 등 외부에 처음으로 개방한다는 점에서 수사의 투명성 개선에 기여할 것이란 기대감이 크다.

[디지털 수사·재판] ②수사정보망 개방으로 투명성 기대
◇ 수사·재판 과정에서 종이서류 사라진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1소위는 '형사사법 절차에서의 전자문서 이용 등에 관한 법률'(형사절차전자문서법) 제정안을 논의 중이다.

법안에는 수사부터 재판까지 형사사법 절차 전반의 문서 작성과 유통을 원칙적으로 전자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참고인 등 사건관계인은 기관에 출석하지 않고도 온라인으로 증거자료를 제출할 수 있다.

피의자 신문조서 등 수사기록도 전자서명을 거친 뒤 공판 과정까지 법원과 피고인 측에 공유된다.

검찰과 법원은 국회 논의와 별도로 형사 전자소송에 걸맞은 수사·재판 시스템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법무부는 2024년 완전 개통을 목표로 전자문서의 작성·유통을 위한 새로운 차세대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 구축 사업을 추진 중이다.

법원은 법정 내 스크린 설비 등을 설치해 전자화된 증거자료를 법정에서 현출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실질적인 전자법정을 구현할 방침이다.

기존 종이 서류와 증거물을 전자기록 형태로 유통하는 것은 피의자 방어권 보장 측면에서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형사소송법에 따라 피고인 측은 시간과 장소 구애 없이 사건기록을 온라인으로 열람하거나 출력할 수 있게 된다.

직접 수사기관을 방문해 철끈에 묶인 종이 서류를 한 장씩 넘기며 복사해야 했던 불편함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디지털 수사·재판] ②수사정보망 개방으로 투명성 기대
◇ 폐쇄적인 검·경 수사…증거관리 투명성 제고
다만 형사 전자소송 시스템이 갖춰진다고 해도 피의자나 피고인 측이 접근할 수 있는 수사 정보의 범위가 이전보다 확대되는 것은 아니다.

피고인 측은 공소제기 후 검사가 보관하는 서류 등에 대해 열람·등사를 신청할 수 있지만 검사는 증거인멸의 우려 등 사유를 들어 거부할 수 있다.

재판부도 검사가 공소제기를 위해 제출한 수사자료 외 다른 자료까지 모두 열람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형사 전자소송으로 수사기관의 정보망이 외부에 처음 개방돼 수사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발품을 팔지 않고 피고인 측이 언제 어디서든 수사 정보를 쉽게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 자체가 폐쇄적인 수사 관행에 대한 견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수사 정보들이 전자화하면 수사 과정에서 확보된 진술 기록이나 증거물이 더 투명하게 관리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실제로 무조서 신문, 압박 수사 등 비판이 끊이지 않는 검찰의 탈법적 수사관행 문제는 폐쇄적인 수사 환경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의 지적이다.

특히 명백한 직접증거가 없는 사건에서 피의자나 참고인이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이 법정에서 번복될 경우 강압·기획수사 의혹이 뒤따르면서 논란을 키웠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의 무조서 출정조사와 정치자금 공여 진술 번복, 김경수 경남지사와 댓글조작 공모관계가 인정된 김동원씨 측의 닭갈비 식사 여부 진술 번복 등이 대표적 사례다.

검찰이 '사건과 무관하다'는 이유로 공판에 제출하지 않은 증거를 피의자 측이 '유리한 증거'로 판단하면서 불거지는 갈등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법무법인 이공 양홍석 변호사는 "수사 정보가 외부에 공유된다는 것은 증거물 관리, 사건기록 등이 언제든 사후적으로 검증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뜻"이라며 "형사 전자소송은 증거 투명성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수사·재판] ②수사정보망 개방으로 투명성 기대
◇ 효율성·투명성 고려한 시스템 구현이 관건
검·경 등 수사기관은 형사 전자소송의 취지에 동의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자칫 기관의 재량을 줄여 수사권을 위축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기류도 감지된다.

검찰 내부적으로 형사 전자소송 시스템의 의미를 형사사법 절차의 효율성을 높이는 '종이서류의 전자문서화'에 국한해 해석하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수도권의 한 부장검사는 "형사소송법에 따라 증거물이라고 해서 판사·변호인이 모두 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형사 전자소송이 기존 법체계에 맞게 짜여야 하는데 잘 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형사 전자소송 시스템이 수사 투명성을 제고하는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검찰이 추진하는 차세대 형사사법 정보시스템이 수사기록의 생성 일시 등 관련 자료를 충분히 담을 수 있도록 촘촘히 설계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수사 효율을 떨어뜨리지 않는 선에서 피의자 신문조서나 증거물들이 시스템상에서 즉시 등록되고 정정·삭제 기록도 모두 남기도록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형사 전자소송 시스템을 촘촘히 설계하면 투명성이 높아지는 장점이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반발이 있을 수 있다"며 "효율성과 투명성의 가치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수사·재판] ②수사정보망 개방으로 투명성 기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