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지역 편의점·PC방 30곳 취재

사업주·근로자 암묵적 '이중시급' 인정
비수도권 지역에서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금액을 주는 자영업자가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30일 한 편의점 직원이 물건을 정리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비수도권 지역에서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금액을 주는 자영업자가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30일 한 편의점 직원이 물건을 정리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경북 칠곡의 한 PC방에서 이달 초부터 근무하고 있는 A씨는 평일 하루 11시간 일하고 8만원을 받는다. 시급으로 환산하면 7200원대다. 아르바이트 구인광고에 적혀 있던 시급은 최저임금과 같은 8720원이었지만, 3개월 동안은 ‘수습 기간’이란 명목으로 이보다 적은 시급을 받는다. A씨는 “손님도 별로 없고, 대부분 시간을 앉아서 일할 수 있어 최저임금을 못 받아도 상관없다”고 했다.
최저임금 못 주는 지방 자영업자들
[단독] "지방 와보면 안다…최저임금 주는 것도, 받는 것도 포기한지 오래"

지방에서 업주들이 최저임금보다 적은 시급을 주는 것은 공공연한 일이다. 최저임금법 위반사항으로 적발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데도 그렇다.

이는 고용주와 근로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지역경제를 지탱하는 산업의 불황, 인구 유출, 코로나19 등으로 경기가 극도로 침체된 상황에서 자영업자와 영세 소상공인들은 최저임금을 맞춰줄 여력이 없다. 지방 근로자들은 일자리 감소로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를 찾기가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이런 이유로 법 테두리 밖에서 일종의 이중가격이 형성된 것이다.

한국경제신문이 전남·충남·경북·경남·강원 5개 지방자치단체에 있는 편의점·PC방·카페·패스트푸드점 30곳을 취재한 결과, 이 중 8곳(26.7%)은 최저임금을 주지 않고 있었다. 상당수는 수습 기간이란 명목으로 임금을 낮췄다.

경북 포항의 한 편의점은 오후 10시부터 이튿날 오전 6시까지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시간당 7800원을 준다. 올해 최저임금(8720원)보다 1000원가량 적다. ‘3개월 수습 기간’이란 명목으로 시급을 낮춘 것이다. 전남 고흥의 한 편의점은 수습 기간인 3일 동안 아예 임금을 주지 않는다.
야간·주휴수당도 없어
충남 예산의 한 편의점 시급은 수습 기간 없이 7500원이다. 근무 시간은 오후 8시30분부터 다음날 오전 8시30분까지인데, 야간수당(통상임금의 50%)도 없다. 이 편의점 사장은 “주변 편의점 대부분이 최저임금 미만의 시급을 주고, 야간수당도 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1주일에 15시간 이상 일한 근로자에게 하루치 임금을 주는 주휴수당을 지급하는 곳도 드물었다. 주휴수당 요건이 적용되는 점포 21곳 중 7곳만 주휴수당을 줬다. 경남 김해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고모씨(27)는 “주휴수당까지 합치면 최저임금이 1만2000원 정도가 돼 감당할 여력이 안 된다”며 “주변 자영업자 대부분이 주휴수당을 주지 않기 위해 근로시간을 주당 15시간 이하로 맞춰 ‘쪼개기식’으로 직원을 고용한다”고 말했다.

요즘은 코로나19 4차 대유행발(發) 거리두기 강화가 더해져 여름장사에 사활을 거는 지역 자영업자들은 낭떠러지 끝에 놓인 판국이다. 지방 중소기업·자영업자들 사이에 “지금도 직원들 시급을 최저임금 수준으로 맞춰주는 게 어려운데, 내년에 최저임금(9160원)만큼 주는 건 꿈도 못 꿀 이야기”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방 소상공인의 임금 지급 능력은 서울 등 대도시에 비해 떨어진다”며 “코로나19까지 덮쳐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곳이 속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진단했다.
“서울과 사정 다른데…”
실상이 이런 만큼 그간 경영계는 지역별로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해줄 것을 요구해왔다. 이는 이해 당사자인 지방 소상공인·자영업자의 바람이기도 하다. “같은 업종이어도 지역별로 매출이 다른데, 왜 똑같은 최저임금을 줘야 하느냐”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GS25 가맹점의 2019년 3.3㎡당 평균 매출은 서울이 3900만원인 데 비해 경북은 2190만원에 그쳤다. 홍성길 한국편의점주협의회 정책국장은 “지방 편의점은 수습 기간을 둬 임금을 깎아 아르바이트생을 구하는 반면, 서울은 점주보다 많은 임금을 받는 아르바이트생이 나오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저임금 제도가 1988년 시행된 이후 지역에 따라 최저임금이 차등 적용된 적은 없다. “제도 도입 취지가 무력화되고, 균형발전이 저해될 것”이라는 노동계 반대에 부딪혀서다. 배진한 충남대 명예교수는 “임금 지급 능력을 감안해 지역별로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면 기업 유치와 지역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길성/장강호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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