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의식 높아진 시민들, '일회용 빨대·플라스틱 뚜껑 없애기' 등 행동 활발
소비자 비판 두려워하는 기업들, 시민 행동에 '화답'…정부·지자체도 적극 지원
쓰레기 줄이면서 돈 버는 '쓰테크' 기업도 등장…"쓰레기 문제, 모두가 나서야"

쓰레기 대란 / 연합뉴스 (Yonhapnews)
[쓰레기 대란]⑤ 쓰레기 버리기 전에 '줄이는' 것이 급선무…시민들 나섰다
탐사보도팀 = "요즘 내가 가장 많이 버리는 쓰레기 뭐가 있을까요? 한 분씩 이야기해볼게요.

"
"커피 캡슐이요.

회사 사무실에서 하루 한 잔씩 먹게 되더라고요.

"
"비닐이요.

식재료 살 때 항목별로 싸놓잖아요.

"
"택배 박스요.

그 안에 완충재 같은 것도 들어있고, 한 사이트에서 주문했는데 박스 여러 개가 오기도 해요.

"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강의실에 10명의 청년참여연대 회원들이 모여 허승은 녹색연합 녹색사회팀장과 쓰레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20대 청년들이 기획한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강연 워크숍'이었다.

이날은 플라스틱과 배달 쓰레기가 논의의 중심이었다.

껌, 아이스팩, 물티슈, 담배꽁초 중 플라스틱이 아닌 것을 고르는 문제가 나왔다.

의견이 분분했다.

허 팀장은 "모두 플라스틱"이라며 "껌이 고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고무가 아닌 플라스틱"이라고 설명했다.

하수구에 버려진 담배꽁초가 하천과 바다로 흘러들어 큰 악영향을 미친다는 말도 덧붙였다.

청년들은 두 시간 동안 허 팀장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실천 방안을 토론했다.

기후위기가 악화하는 것을 보고 쓰레기 문제가 자신의 일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김기회(27) 씨는 "배달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고도 배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한다고 밝혔다.

워크숍 기획자로 참여한 대학생 강우정(25) 씨는 "쓰레기라는 거대한 문제 앞에서 무력해지기 쉽지만, 청년 개개인이 쓰레기 감축을 실천해 문제가 점차 개선되도록 하는 데 의미를 뒀다"고 말했다.

[쓰레기 대란]⑤ 쓰레기 버리기 전에 '줄이는' 것이 급선무…시민들 나섰다
◇ 쓰레기 줄이기, 이제 시민들이 나선다
우리나라의 쓰레기 문제는 심각하다.

많이 처리되기는 했지만, 전국 곳곳에 불법 폐기물이 쌓인 '쓰레기산'이 400곳 가까이 생겨났다.

쓰레기 버릴 곳을 찾지 못해 서울, 인천, 경기도 등 지자체들이 심각한 분쟁을 벌이기도 한다.

'쓰레기 대란'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쓰레기는 일단 생겨나면 땅에 묻거나, 태우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쓰레기 매립지나 소각장 건설을 반기는 주민은 없다.

극심하게 반대한다.

경제 발전과 함께 쓰레기는 갈수록 늘어나는데, 매립지나 소각장 증설은 제자리걸음이니 쓰레기 문제가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근본적인 해법은 쓰레기를 '줄이는' 것이다.

쓰레기가 배출되기 전에 선제적, 예방적인 방안을 적용해 쓰레기 배출 자체를 줄이는 것이 최선이다.

어쩔 수 없이 쓰레기를 배출했다면 배출된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쓰레기를 재활용한다면 땅에 묻거나 태울 필요가 없다.

여기에 시민들이 참여할 여지가 있다.

쓰레기를 태우거나 묻는 것은 시민들의 소관 밖이지만,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고 재활용하는 것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가장 중요하다.

기후위기를 겪으며 환경 의식이 높아진 시민들은 이제 쓰레기 줄이기와 재활용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쓰레기 대란]⑤ 쓰레기 버리기 전에 '줄이는' 것이 급선무…시민들 나섰다
지난해 소비자단체 '쓰담쓰담'을 중심으로 뭉친 소비자들은 햄 통조림의 플라스틱 뚜껑을 기업으로 반납하는 '스팸 뚜껑 반납 운동'을 벌였다.

불필요한 플라스틱 사용을 조금이라도 줄여보자는 생각이었다.

CJ제일제당은 통조림의 플라스틱 뚜껑을 없애고, 각종 포장재를 줄인 세트 상품을 출시하면서 이에 화답했다.

덕분에 86t의 플라스틱 배출이 줄었다고 한다.

이 사례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기업의 관행을 바꾼 좋은 사례다.

소비자들의 비판에 민감한 기업 입장에서는 높아진 환경 의식을 지닌 시민들의 행동에 긴장할 수밖에 없다.

시민들이 나서면 기업도 바뀐다.

음료팩에 일회용 빨대 부착을 금지하자는 '빨대 어택' 캠페인도 벌어졌다.

시민들은 소셜미디어에 일회용 빨대가 부착된 음료팩 사진과 함께 '일회용 빨대 소비를 줄이고 싶습니다', '불필요한 빨대는 이제 그만' 등의 문구를 올렸다.

화들짝 놀란 매일유업 등 식음료업계는 고객최고책임자가 직접 고객에게 손편지를 쓰는 등 적극적인 개선 의지를 밝혔다.

이후 일회용 빨대를 없앤 음료팩을 출시하기에 이르렀다.

[쓰레기 대란]⑤ 쓰레기 버리기 전에 '줄이는' 것이 급선무…시민들 나섰다
◇ '배달 쓰레기 줄이기' 운동 활발…지자체도 적극 지원
시민들의 행동은 이제 '배달 쓰레기'로 옮겨가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후 음식 배달과 택배로 인한 쓰레기가 급증하고 있다.

녹색연합에 따르면 올해 들어 배달 음식은 매일 270만 건 주문되고, 배달 쓰레기는 매일 최소 830만 개 발생한다.

택배 물동량은 2012년 14억 개에서 2020년 33억 개로 2배 넘게 늘었다.

이로 인한 플라스틱 쓰레기만 줄여도 쓰레기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올해 녹색연합은 배달 쓰레기를 모아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기업으로 보내고, 소셜미디어에 배달 쓰레기 사진을 올리는 '배달 쓰레기 어택' 운동을 벌였다.

많은 시민이 참여한 이 운동은 국내 배달앱 3사로 꼽히는 배달의 민족, 요기요, 배달통의 변화를 끌어냈다.

이들은 지난달 1일부터 일회용 수저와 포크를 소비자가 요청해야 배달하는 시스템으로 바꿨다.

각 지자체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경기도는 지난해 12월 공공 배달앱 '배달특급'을 내놓았다.

배달특급은 국내 배달앱 최초로 '친환경 다회용기'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식기 렌털 및 세척 전문업체가 다회용기를 가맹 음식점에 제공하고, 음식배달 후 소비자가 사용한 식기를 수거해 세척한 뒤 다시 음식점에 제공하는 방식이다.

서울 강동구는 지난 4월부터 구민들이 관내 종합사회복지관을 방문해 재활용 쓰레기를 전달하면 보상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투명페트병은 개당 10원, 알루미늄캔은 500원, 철캔은 50원, 플라스틱은 1kg당 10원을 포인트나 현금으로 지급한다.

제주도는 지난달 '2030 쓰레기 걱정 없는 제주'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2030년부터 폐기물 직매립 금지,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 30% 감축, 재활용자원 순환산업 육성 및 일자리 창출 등을 이뤄 제주도를 명실상부한 '자원 순환 경제사회'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허승은 녹색연합 팀장은 "정책은 시민의 목소리로 만들어지고, 기업은 시민의 행동으로 변화한다"며 "시민의 힘이 모이면 더 많은 지자체와 기업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기업들, 이제 '쓰테크'로 돈 번다…"쓰레기 문제, 모두의 책무"
기업들은 소비자들의 행동에 화답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고 있다.

쓰레기 재활용 등으로 돈을 버는 '쓰테크'(쓰레기+재테크)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폐기물 자원화 전문기업인 씨아이에코텍 조일호 대표는 '의성 쓰레기산 해결사'로 불린다.

의성 쓰레기산은 2019년 미국 CNN방송이 보도해 국제적 이슈가 됐던 경북 의성군 단밀면 생송리의 20.8만t짜리 거대 쓰레기산이다.

그는 7년으로 예상됐던 쓰레기산 처리 기간을 1년 6개월로 단축하고, 처리 비용도 절반으로 줄였다.

폐기물, 토사 등의 70%를 재활용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조 대표는 "우리 회사의 강점인 '폐비닐 선별 기술'을 활용해 쓰레기 중 재활용 가능 자원을 골라내는 방식으로 비용과 기간을 대폭 줄였다"며 "이 기술을 활용하면 지자체 간 갈등이 심각한 수도권매립지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수도권매립지는 2025년 이후 사용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수도권매립지에 종량제봉투 그대로 직매립한 쓰레기를 파내 절반 이상의 순환자원을 확보한 뒤 '진짜 쓰레기'만 소각해 매립하면 된다는 얘기다.

이러한 과정으로 순환자원을 확보하면 쓰레기 재활용률을 크게 높여 전국 각지의 매립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친환경 스타트업 수퍼빈은 인공지능(AI) 기반의 순환자원 회수 로봇 '네프론'을 개발했다.

네프론이 선별한 자원은 고품질의 플라스틱 재생 소재인 '플레이크'로 재가공된다.

투명한 페트병을 잘게 부수면 눈송이처럼 작은 플라스틱인 플레이크가 되는데, 이는 화학기업으로 판매돼 가방, 의류 등으로 재탄생한다.

서울, 경기, 광주, 울산, 부산 등에는 재활용 쓰레기를 가져가면 식음료 등을 살 수 있는 포인트로 바꿔주는 분리수거함 184개가 설치됐다.

친환경 스타트업 오이스터에이블이 개발한 사물인터넷(IoT) 기반 분리수거함 'WeBin'이다.

이용자가 재활용품의 바코드를 태그한 후 라벨을 분리해 수거함에 넣으면 재활용품 1개당 1포인트를 적립해준다.

[쓰레기 대란]⑤ 쓰레기 버리기 전에 '줄이는' 것이 급선무…시민들 나섰다
동신제지는 우유팩과 종이컵을 재활용해 화장지를 만들고 있다.

이 회사는 우유팩에 도포된 비닐을 벗겨내면 '버진 펄프'로 불리는 종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1992년부터 버려지는 우유팩을 사들여 화장지를 생산해왔다.

이 화장지는 국내 1호 '친환경마크'를 받았다.

우유팩 1t을 재활용하면 30년생 나무 20그루를 심어 숲을 조성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하지만 국내에서 배출되는 연간 7만t의 우유팩 중 재활용되는 것은 25%, 1만7천t에 불과하다.

우유팩은 별도로 수거해야 하지만, 이것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노응범 동신제지 대표는 "종이는 셀룰로스라는 섬유질이 소진될 때까지 100번이고 1천 번이고 재활용이 가능하다"며 "지자체가 우유팩 수거 거점을 늘리고, 시민들도 제대로 된 분리수거를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미란 환경운동연합 생활환경국장은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려면 시민과 기업, 지자체, 정부 모두가 한뜻으로 책임감을 느끼고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탐사보도팀: 권선미·윤우성 기자, 정유민 인턴기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