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 밝히는 허익범 특검 / 사진=연합뉴스

입장 밝히는 허익범 특검 / 사진=연합뉴스

“공정한 선거를 치르라는 경종이라고 생각합니다.”

‘드루킹 댓글 여론조작’ 사건을 수사한 허익범 특별검사가 지난 21일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실형 최종 확정 후 한 말입니다. 허 특검은 이날 대법원 선고 후 “이 사건은 특정인에 대한 처벌의 의미보다는 정치인이 사조직을 이용해 인터넷 여론조작 방식으로 선고운동에 관여한 행위에 대한 단죄로 봐야 한다”는 말도 했습니다.

김 지사의 ‘댓글 조작 공모’ 사건은 2017년 3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지 4년4개월 만에 마침표를 찍게 됐습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허 특검의 임무도 마무리 된 것이죠.

공안검사 출실인 허 변호사는 2018년 6월 특검으로 임명됐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의 합의와 추천을 존중해 허 변호사를 임명했다. 허익범 특별검사가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의 실체에 대해 객관적이고 공정한 수사를 펼칠 것으로 기대한다.” 당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발표한 내용입니다. 당시 허익범 변호사는 자유한국당이 추천했습니다. 고검장 출신으로 바른미래당과 평화당이 추천한 임정혁 변호사도 추전자 명단에 있었지만 청와대는 허 특검을 선택했죠. 청와대의 기대대로 허 특검은 사건의 실체를 밀도있게 파헤쳤습니다.

허 특검은 합리적인 보수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정치성향이 편중되지도 않았고 균형감각도 있다는 것이죠. 함께 일했던 변호사들은 ‘모나지 않은 보수’, ‘담백한 성격’ 등으로 그를 설명했습니다. 검찰 재직 시절 ‘객관적이면서도 강직하다’는 평가도 받았다고 합니다.

김경수 지사는 ‘친문(親文) 핵심인사’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잠재적인 대권 주자이기도 합니다. 특검 입장에선 수사하기 부담스러운 상대가 아닐 수 없습니다. 때문에 당시 법조계 안팎에선 ‘드루킹 특검’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증거가 가리키는 방향대로 수사하겠다.”

허 특검이 특검팀 출범 첫 날 한 말 입니다. 억지로 진술을 짜 맞추지 않고 객관적 증거로 승부를 보겠다는 겁니다. 그의 말대로 특검팀은 김 지사가 경공모 아지트인 ‘산채’에 오는 날 경공모 카드 사용내역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김 지사 운전기사가 경공모 산채 인근에서 카드를 쓴 내역도 확인했죠. 네이버 등 포털에서 ‘킹크랩’을 구동한 로그기록 날짜와 시간이 이와 맞아떨어졌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특검팀이 재판부에 제출한 증거만 1333건에 달했다고 합니다. 재판부는 제출된 증거에 비추어 사실관계를 모두 인정했고 김 지사에게 징역 2년의 실형을 확정했습니다.

허 특검은 여러모로 어려운 점이 많았을 겁니다. 정권 초기라 여당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 했습니다. 압수수색 영장도 수차례 기각됐습니다. 그리고 김 지사에 태평양과 LKB 등 대형로펌과 10명 넘는 변호사가 변호를 했습니다. 6명의 특검 공판팀 변호사들이 상대하기 버거웠을 겁니다. 그럴수록 특검팀은 증거에 집중했습니다. 대법 선고를 앞두고 허 특검과 팀원이 파기 환송 가능성에 대비해 디지털포렌식 자격증 시험까지 봤다는 일화도 유명합니다. 이렇게 그들은 ‘최약체 특검’에서 ‘가장 성공적인 특검’이라는 드라마틱한 반전을 이끌어 냈습니다.

공교롭게 분위기가 반전된 특검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박영수 특검’입니다. 지난 19일 경찰은 수산업자를 사칭한 김모씨(43‧구속)로부터 포르쉐 렌터카를 받았다는 의혹 속에 사퇴한 박영수 전 특별검사를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입건했습니다. 경찰은 이와 관련해 다른 의혹들도 추가 확인중입니다.

박 전 특검은 국정농단 사건의 수사 총책임자였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박 전 특검이 맡았던 사건입니다. 이 특검은 정권 핵심부를 정면으로 겨냥한만큼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성적표는 훌륭했습니다. 총 54명의 피고인 가운데 유죄가 확정된 사람들은 38명에 달합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징역 22년 확정, 청와대 ‘문고리 3인방’ 전부 유죄. 안종범 최순실 장시호도 유죄, 이병기‧이병호 등 전직 국정원장들도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삼성 등 기업 관련 수사에서 유죄를 이끌어 낸 것도 인상적입니다. 이 역시 화려한 특수수사 경력을 바탕으로 ‘재벌 총수의 저승사자’로 불린 박 전 특검의 영향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특검에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수사팀장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대검 중수부장(검사장)을 두 차례나 지낸 박영수 전 특검은 뇌물죄와 관련한 여러 새로운 수사기법을 만든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뇌물을 준 사람과 받은 사람 두 사람 간의 문제가 아닌, 중간에 제 3자가 있는 ‘제3자 뇌물죄’를 적극 활용해 수사 성과를 냈습니다. 이제 그 방법론에 본인이 걸려들 수도 있는 상황이 되버렸습니다. 박 전 특검을 둘러싼 여러 의혹들로 인해 특검팀이 이룬 성과들이 일정부분 타격을 입게 되는 건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수식어도 ‘특검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특검 중 하나’에서 ‘성공했던 특검’으로 수정될 것 같습니다.

두 특검의 희비가 엇갈리는 걸 보며 이런저런 생각이 듭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끝이 좋아야 모든 게 좋다’는 말도 떠오릅니다. 결국 본분에 충실했을 때 최상의 성과가 나오고, 그 성과가 희석되지 않도록 만사에 유의해다 한다는 점도 상기해봅니다. ‘특별검사’와 같은 특별한 자리에 있을 땐 더더욱 자신과 주변을 추스르고 경계해야겠죠.

허 특검이 지난 21일 대법원 판결 직후 낸 입장문 중 한 부분으로 글을 마치려 합니다.
“외부적으로 험악하고 내부적으로는 열악한 환경에서 업무수행한 수사팀, 특히 수사기관 내에 24시간 증거를 찾아온 포렌식팀, 공판 기간 내내 많은 디지털 증거를 모두 깊고 세밀하게 재검증·재분석·재해석해 준, 또 120만개가 넘는 댓글을 모두 검토해준 특별수사팀 등의 헌신과 열의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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