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미 이화여대 총장은 “전공을 막론하고 인공지능(AI)을 이해하고 활용할 줄 아는 역량이 중요한 시대”라며 “AI를 중심으로 다양한 첨단 분야 융합전공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언  기자
김은미 이화여대 총장은 “전공을 막론하고 인공지능(AI)을 이해하고 활용할 줄 아는 역량이 중요한 시대”라며 “AI를 중심으로 다양한 첨단 분야 융합전공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언 기자
“아픔을 딛고 더 투명하고 활력 넘치는 대학이 될 것입니다. 이공계 강화로 학교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은 물론 사회를 분열시키는 젠더 갈등 해소에도 앞장서겠습니다. ‘이화인’의 자부심을 되찾겠습니다.”

25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 짙은 녹색 카디건을 입고 나타난 김은미 이화여대 총장은 “코로나19로 모두가 어려운 시기에 학교와 총장이 늘 학생들 곁에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어 ‘이화그린’을 입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덥지 않냐”고 물었더니 김 총장은 “원래 잘 입지 않던 색깔인데 학생들이 잘 어울린다고 해서 초록색 옷만 보면 사고 있다”며 웃었다.

이화여대 총장실이 원래부터 학생들과 가까웠던 것은 아니다. 5년 전 ‘정유라 입학 특혜 사건’과 ‘미래라이프대학 추진 논란’이 벌어졌을 때 갈등은 극에 달했다. 학생들이 본관을 점거하고 경찰이 교내에 진입했다. 당시 시위에 참가한 학생과 교수들이 진한 녹색 스카프를 두르면서 이화그린은 학원 민주화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이후 2017년 첫 직선제 총장이 탄생했고 김 총장이 바통을 이어받아 지난 3월 취임했다. 김 총장은 “아픔을 겪었지만 소통이 활발해지고 학교가 더 투명해지는 계기가 됐다”며 “전 총장님께서 학교를 안정화시켰으니, 이제는 학생과 동문들의 열망을 담아 도약하는 일만 남았다”고 강조했다.

“젠더 갈등, 남녀가 함께 해결책 모아야”

김 총장은 1987년부터 10년간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사회학과 교수를 지낸 뒤 1997년부터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로 재직했다. 국제개발협력을 위한 연구 활동에 힘을 쏟다가 2013년 삼성전자의 첫 여성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그는 “세계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 요구가 커지는 상황이었다”며 “개발도상국 내 사회공헌 활동에 대해 여러 의견을 드렸다”고 말했다. 최근 기업의 지상과제로 떠오른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대해 선제적 시각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김 총장은 “이제는 대학도 ESG 활동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구한말 메리 스크랜튼 여사가 들어보지도 못한 조선에 와서 교육을 시작한 것이 이화 설립의 계기였다”며 “교육으로 받은 은혜를 교육으로 갚기 위해 개도국 출신 여성 인재들을 교육하고 전액 장학금과 생활비를 지원했다”고 소개했다.

환경 문제에서는 최재천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를 중심으로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 총장은 “총장 직선제를 통해 학내 거버넌스(지배구조)를 투명하게 만든 것도 ESG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성 교육기관으로서 할 일이 아직 많다고 했다. 그는 한국이 세계경제포럼(WEF)이 올해 발표한 ‘성 격차 지수’에서 156개국 가운데 102위에 그쳤다는 지표를 제시했다. 김 총장은 “한국은 경제 수준에 비해 아직 갈 길이 멀다”며 “성평등 사회가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연구해 사회에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사회에 이슈로 떠오른 젠더 갈등 해법도 제시했다. 김 총장은 1992년 미국 LA폭동 사건을 예로 들었다. 그는 당시 서던캘리포니아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다양한 인종의 화합 과정을 연구했다. 김 총장은 “LA에 유색인종만 참여하는 ‘마이너리티 카운슬’이라는 조직이 있었는데, 백인들이 여기에 참여하고 나서야 갈등이 봉합됐다”며 “한쪽만 모여 불평등, 차별만 강조하면 혐오와 갈등은 끝나지 않는다. 어렵겠지만 남녀가 함께 모여야 해결책이 나온다”고 했다.

AI 융합학부 내년 신설

이화여대는 올해 창립 135주년을 맞아 2030년까지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대학으로 도약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이화 비전 2030+’를 제시했다. 그동안 약점으로 지적됐던 이공계를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내년 인공지능(AI)융합 학부의 첫 신입생을 선발하고, AI 단과대학도 2023년 이후 신설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앞으로 전공 분야를 막론하고 AI를 이해하고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게 김 총장의 지론이다. 김 총장은 “이화가 전통적으로 강한 인문·사회·예체능 분야를 접목한 AI 융복합에 집중해 특성화하겠다”며 “AI를 법적으로 어디까지 규제해야 하는가, 젠더 격차 해소에 AI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등에 대해서 연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2학기에는 연구개발(R&D) 총괄기획단도 발족한다. 연구개발 및 산업·학문·연구 협력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위원회다. 학내 교수들의 연구활동 중 세계적으로 알려진 10개를 집중 지원하고 해당 분야 ‘스타 교수’를 영입할 계획이다.

김 총장은 학생들의 창업도 적극 지원하겠다고 했다. 이화여대는 올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실험실창업혁신단’ 참여 기관으로 선정됐다. 이를 통해 앞으로 5년 동안 연평균 12억원씩 최대 60억원을 지원받는다. 김 총장은 “MZ세대(밀레니얼+Z세대)는 창업 수요가 정말 높은 것 같다”며 “학내 모든 인적 역량을 동원해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대학에서 오랫동안 재직한 경험을 바탕으로 학령인구 감소와 대학의 재정 악화에 대한 해법도 내놨다. 김 총장은 “미국 사립대들은 막대한 규모의 기부금을 주식·부동산 등 다양한 자산에 투자해 재정을 확충하고 있다”며 “한국도 규제를 완화해 대학이 투자활동에 나설 수 있게 물꼬를 터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만수/김남영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