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안팎 "특정 사건 피해자 처벌 불원, 양형 사유로 고려해선 안 돼"
어린 딸 학대·성폭행해도 피해자 탄원에 감형…"판례 바꿔야"
어린 친족을 상대로 한 학대나 성폭행 사건에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피해자 탄원이 가해자 감형 요소로 쓰이는 판례 흐름을 바꿔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A(33)씨는 훈계를 빙자해 평소 초등학생 딸에게 의자에 앉아있는 것처럼 무릎을 구부린 채 몸을 움직이지 못 하게 하는 '의자 벌'을 주곤 했다.

아내와 다투면 화풀이로 자녀를 불러 체벌하기도 한 그는 2019년부터 이듬해까지 이유 없이 딸의 팔을 부러뜨리거나 발가락 사이에 휴지를 넣고 불을 붙이는 등 학대를 일삼았다.

비슷한 시기 그는 주거지에서 딸을 여러 차례 성폭행까지 했다.

대전지법 형사11부(박헌행 부장판사)는 13세 미만 미성년자 강간 등 죄를 물어 지난 15일 A(33)씨에게 징역 13년을 선고했다.

어린 딸 학대·성폭행해도 피해자 탄원에 감형…"판례 바꿔야"
재판부는 "딸을 인격적으로 대하기는커녕 성적 욕망 분출이나 분노 표출의 대상으로 삼은 잔혹하고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질렀다"며 "피해자의 두려움과 절망감이 얼마나 컸을지 쉽게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판시했다.

다만 재판부는 '아버지를 용서해달라'는 취지의 피해자 탄원서를 형량 판단에 유리한 요소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 피해 아동은 "아버지를 용서하니 아버지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새사람이 되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처벌 불원 의사를 재판부에 문서로 전달했다.

피해 아동 엄마이자 A씨 아내 역시 비슷한 맥락의 선처 탄원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어린 딸 학대·성폭행해도 피해자 탄원에 감형…"판례 바꿔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미성년 자녀 성폭행 등 특정 사건의 경우 가해자와의 관계 때문에 피해자 실제 의사가 오염될 수 있는 만큼 처벌 불원 표명을 앙형 고려 사유에서 배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 중 한 명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피해 아동이 본인을 아프게 한 사람을 벌할지 고뇌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가혹한 고통"이라며 "아동학대의 경우 피해자 처벌 불원 의사를 인정하지 않도록 특별감경 사유에서 삭제하도록 하는 개선책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62) 역시 "피해자가 모친 등 다른 가족으로부터 사실상 탄원서 제출을 종용받으면서 2차 피해를 볼 수도 있다"며 "친족 간 또는 아동에 대한 성폭력 사건의 경우 '가해자를 용서한다'는 취지의 탄원을 감형 사유로 보지 않도록 판례를 바꿔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아동학대 범죄 재판 과정에서 감형 요인으로 고려되는 합의 관련 양형 요소를 정비 중이다.

처벌 불원, 상당한 보상, 보상을 위한 진지한 노력 등에 대한 양형 참작 사유 적용이 일관되지 않은 측면이 있다는 지적에서다.

여기에 더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성범죄에 대한 양형 판단에서도 가해자·피해자 관계를 고려해 처벌 불원서를 얼마나 인정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