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영국에서 열린 남자 골프 메이저 대회인 디오픈에는 구름 같은 갤러리가 몰렸다. 지난해 코로나로 취소되고 2년 만에 열려서 그런지 골프 코스에는 관람객이 가득했다. 하루 평균 관람객 숫자가 3만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런데 TV화면을 보니 코스를 따라 도열해 있는 갤러리나 특정 홀 옆에 만든 갤러리 스탠드를 가득 메운 사람들 중 마스크를 낀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갤러리 뿐 아니라 선수나 경기요원 중 그 누구도 마스크를 끼고 있지 않았다.

한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아마도 난리가 났을 것이다. 정부는 물론 일반인들조차 당장 대회를 취소하고 관람객 전원 전수조사와 격리조치를 하라고 호통을 쳤을 법하다.

요즘 영국의 하루 코로나 확진자 수는 5만명을 오르 내린다. 인도네시아와 함께 하루 신규 환자 발생자 수가 가장 많은 나라다. 그런데 영국인들은 거의 마스크 착용엔 관심이 없다. 영국 정부는 아예 19일부터 모든 코로나 봉쇄조치를 풀기까지했다. 마스크 착용 의무화나 사회적 거리두기 자체를 없애버린 것이다.

한국의 하루 확진자는 오늘 1784명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지만 최근에는 1200~1500명 수준이었다. 영국의 인구가 한국보다 32% 가량 많은 걸 감안해 숫자를 조정해도 한국의 확진자 숫자는 영국의 25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영국과는 완전히 반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실내·외 마스크 착용 의무화는 물론 수도권은 거리두기 4단계로 오후 6시 전에는 4인까지, 이후에는 2인까지만 모일 수 있고 비수도권에서도 5인 이상 모임을 제한하는 조치가 시작됐다. 강릉과 제주는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각각 4,3 단계로 격상됐다. 사실상 셧다운 체제로 들어간 것이다.

코로나라는 같은 병에 대해 두 나라의 대응 방식이 이렇게 극과 극인 것은 왜일까. 영국인들은 바이러스에 무지하고 과학적 지식이 없고 이기주의적이어서 남에 대한 배려가 없어서일까? 한국인은 영국인들에 비해 바이러스나 전염병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고 합리적 사고를 하고 남에 대한 배려를 많이해서일까?

일단 두 나라의 백신 접종율을 보면 좀 차이가 나기는 한다. 영국인 중 1회 이상 백신을 맞은 사람은 88%, 2회 접종자는 68% 가량이다. 한국은 이 비율이 각각 32%,13% 정도다. 하지만 이 정도 차이로 거의 극과 극인 양국의 방역 지침을 설명하기엔 너무 부족하다.

영국이 최근 확진자 급증에도 코로나 봉쇄를 푸는 이유는 비록 코로나에 걸리는 사람은 많지만 사망이나 중증환자 발생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노년층 등 코로나 고위험군의 90% 이상이 백신 접종을 마쳐 이들은 감염되더라도 치명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신규 확진자 대부분은 코로나로 사망 가능성이 거의 없는, 접종을 하지 않은 젊은이들이이어서 확진자 수 급증에 큰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는 게 영국 정부의 생각이다.

실제 영국의 하루 사망자 수는 수십명 수준으로 최근 치사율은 0.1%에도 못미친다. 어차피 코로나의 완전 종식은 당분간 어렵고 걸려도 1천명중 한명도 안 죽는 병이라면 독감처럼 공존을 택해야지 확진자의 상태는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확진자 숫자에만 매달려 일상생활에 과도한 규제를 가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게 이들의 논리다.

최근 델타 변이로 확진자가 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영국 보건당국(PHE)은 화이자 2회 접종자의 경우 델타 변이로 입원하는 것을 96%, 아스트라제네카 2회 접종의 경우는 델타 변이로 인한 입원을 92% 각각 막아준다고 공식 발표했다.

한국의 코로나 치사율은 누적 1.1%로 누적 2.35%인 영국의 절반도 안된다. 백신 접종으로 영국의 최근 치사율이 0.1% 아래로 떨어졌지만 한국은 영국보다 낮은 접종률에도 최근 치사율이 영국보다 결코 높지 않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사망자나 치사율에 대한 보도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오직 "신규 확진자 수가 급증하고 있다. 하루 최대가 됐다"는 뉴스만 넘치고 국민들 역시 확진자 숫자만 보고 코로나의 심각성을 판단한다.

최근 감염이 급증하고 있는 젊은세대에 대해서도 영국에서는 어차피 이들은 걸려도 별 탈 없으니 그냥 내버려 두자는 식인 반면 한국에서는 비록 일부지만 코로나 확산을 시키는 젊은세대부터 접종을 시키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한국과 영국은 그야말로 코로나에 대한 정부의 대처나 국민들의 인식이 극과 극을 달린다. 우리가 질병을 두려워하고 예방 또는 치료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것이 사람의 건강을 심하게 해쳐 일시적 혹은 영구적 장애를 가져오거나 사망에 이르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완치가 되더라도 와병중 고통을 최소화하려는 이유도 있다.

중요한 것은 치명적이지 않은 병이라면 그 병의 확산을 막기위한 각종 통제조치가 낳는 부작용과 그런 통제를 하지 않을 경우 질병 확산으로 인한 위험간 비교 형량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염성이 높은 델타 변이의 확산으로 확진자 수가 늘고 있지만 최근 국내 코로나의 치명률은 독감(0.1%)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고위험군인 고령자에 대한 접종이 많이 이뤄진 결과다.

물론 영국의 코로나 봉쇄 해제조치에 대해서는 비판적 시각도 많다. 확진자가 늘면 중증 환자 역시 비례적으로 늘 수밖에 없다며 지나치게 일찍 봉쇄를 풀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봉쇄 일색의 한국의 방역조치에 대해 다른 나라들이 칭찬을 하는 것도 아니다. 한국이 헬스클럽의 음악 빠르기나 러닝머신의 속도까지 제한 것에 대해서는 조롱 섞인 외신 보도들도 나왔다.

정답은 없지만 적어도 환자상태는 묻지 않고 확진자 숫자만으로 방역단계를 정하는 천편일률적인 방역지침은 이제 그만둘 때도 됐다. 불필요하게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생업에도 불필요한 제약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정부는 '정치방역'이라는 비판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

"더 이상 확지자 수를 집계하지 않고 중증 환자의 치료에 집중하면서 사망률, 그러니까 치명률을 낮추는데 집중한 새로운 방역체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과 교수의 주장에 정부나 의료인, 그리고 국민들이 좀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독감 환자 수를 매일 발표하지 않 듯, 코로나 역시 큰 의미 없는 확진자 숫자에 매달리기보다 중증 환자 치료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고 의료 자원을 필요한 데 집중할 수 있다는 게 김 교수의 지적이다.

방역당국도 그렇지만 국민들의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 독감 걸린 사람에 대해 아무도 비난하지 않듯이 코로나 감염자를 마치 죄인 취급하는 사회분위기도 바뀌어야 한다. 방역지침이 지나치게 비현실적이고 과도한데 그런 지침을 어긴 사람을 모두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곤란하다. 언론의 보도 태도 역시 이제는 좀 더 과학과 사실에 입각해 바뀔 때가 됐다. 코로나에 걸렸다 완치됐거나 백신 접종후 큰 이상이 없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은데 일부 심각한 후유증이 있는 사람이나 사망 사례를 집중 보도하면 그만큼 사람들의 공포심리는 커지게 마련이다.

당분간 코로나 박멸은 불가능해 보인다. 이제는 막연한 공포로 벌벌 떨기보다는 슬기로은 공존을 공공연하게 논의할 때가 됐다.

김선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