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동차업계에는 ‘협력사들끼리는 특허소송을 내지 않는다’는 일종의 불문율이 있다. 완성차 업체가 복수의 협력사들과 부품 개발을 같이 진행하는 만큼 서로 어떤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런 만큼 소송까지 갈 정도로 상대방 기술을 침해하기는 쉽지 않은 분위기다. 협력사들끼리의 분쟁은 부품 납품에도 차질을 빚을 공산이 커 완성차 업체도 달가워하지 않는다.

2019년 한온시스템이 두원공조를 상대로 특허소송을 제기한 사례는 이런 점에서 이례적이란 평가를 받았다. 법조계에선 “한온시스템이 승소를 확신하지 않았다면 낼 수 없는 소송”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법무법인 광장은 이런 예상을 뒤집고 지난 1월 최종적으로 두원공조의 승소를 이끌어냈다.
車까지 분해한 광장…'부품사 특허전쟁' 승리 이끌다

자동차 분해해 증거 확보

두원공조는 현대자동차·기아에 전기차용 전동압축기, 전동압축기용 인버터 모듈, 차량용 독립 공조장치 등을 납품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한온시스템이 자사 특허를 침해했다며 소송 대상으로 삼은 제품은 전동압축기다.

한온시스템 측은 “두원공조는 해당 제품을 생산·사용·양도해서는 안 되며 그 제품을 전시해서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두원공조 측은 “한온시스템이 이런 소송을 제기한 것은 권리 남용”이라며 “두원공조 제품은 한온시스템 특허 출원 전 공개된 기술만으로 만든 것”이라고 맞섰다.

이 소송의 핵심은 여느 특허소송과 마찬가지로 두원공조의 전동압축기가 한온시스템의 ‘특허 청구항’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가리는 것이었다. 특허 청구항이란 보호되는 특허의 범위를 나타내는 항목이다. 특허침해 문제가 발생하면 법원에서는 청구항에 있는 구성요소들이 해당 제품에 있는지, 없는지 등을 살펴 침해 여부를 판단한다.

광장 변호사들은 청구항 구성요소 하나하나를 살펴 ‘두원공조가 한온시스템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아 나섰다. 그 과정에서 두원공조 엔지니어와의 협업을 통해 세부 도면을 분석하는 작업, 한온시스템이 특허를 출원하기 전 생산된 부품 실물을 찾는 작업 등을 병행했다. 류홍열 광장 변호사는 “전동압축기를 찾아 울릉도까지 가기도 하고 20년 가까이 된 차를 중고차 시장에서 구매해 직접 분해하기도 했다”며 “그 과정을 하나하나 동영상으로 찍어 증거 자료로 재판부에 제출했다”고 말했다.

결국 두원공조의 전기차용 전동압축기 등에 제기된 특허침해금지 가처분소송은 기각됐다. 한온시스템이 불복하긴 했으나 뒤에 소를 취하함으로써 사건은 종결됐다. 오충진 광장 변호사는 “의뢰인과 호흡이 잘 맞은 게 승소 요인”이라며 “세밀한 기술적 이해와 분석을 바탕으로 사소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실물 앞세운 게 승소 열쇠”

한온시스템 대리인은 김앤장 법률사무소였다. 김앤장 변호인단은 광장 변호인단이 제시한 자동차 실물 부품 등이 언제 생산된 것인지, 그 시점에 사용된 것이라고 볼 수 있는지 등을 세밀하게 물었다. 광장 변호인단은 “증거 실물들을 눈앞에 제시한 점이 재판부를 설득할 수 있었던 열쇠”라고 했다.

특허법원 판사 출신인 오충진·김부한 변호사, 특허 실무 전문가인 류홍열 변호사, 변리사 자격증이 있는 김민욱 변호사, 특허심판원 출신인 곽준영 변리사 등이 팀을 꾸려 사건을 맡았다. 오 변호사는 해당 사건을 총괄하며 법원 및 특허심판원에서 구두변론을 주도했다. 김부한 변호사는 “두원공조의 제품은 한온시스템의 특허를 침해한 것이 아니라 이전에도 쓰이던 기술”이라는 법리를 폈다.

류 변호사는 중고차 시장과 해외 중고 부품 사이트를 참고하며 새로운 증거들을 수집했다. 김민욱 변호사와 곽 변리사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약점이 될 만한 부분을 집중 보완하고, 대응책 수립에 신경썼다. 류 변호사는 “협력사들끼리의 소송이 워낙 드물다보니 이번 소송은 두원공조가 치른 첫 특허소송이었다”며 “업계에서도 관심 있게 지켜본 소송에서 승소해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