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을 던지면 땅 위의 공 그림자도 따라 움직인다. 공이 움직여서 그림자가 움직인 것이지 그림자 자체가 움직여서 그림자의 위치가 변한 것은 아니다. 과정 이론은 이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과정은 대상의 시공간적 궤적이다. 날아가는 야구공은 물론이고 땅에 멈추어 있는 공도 시간은 흘러가고 있기에 시공간적 궤적을 그리고 있다. 공이 멈추어 있는 상태도 과정인 것이다. 그런데 모든 과정이 인과적 과정은 아니다. 어떤 과정은 다른 과정과 한 시공간적 지점에서 만난다. 즉, 두 과정이 교차한다. 만약 교차에서 표지, 즉 대상의 변화된 물리적 속성이 도입되면 이후의 모든 지점에서 그 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과정이 인과적 과정이다.

가령 바나나가 a 지점에서 b 지점까지 이동하는 과정을 과정 1이라고 하자. a와 b의 중간 지점에서 바나나를 한 입 베어 내는 과정 2가 과정 1과 교차했다. 이 교차로 표지가 과정 1에 도입되었고 이 표지는 b까지 전달될 수 있다. 즉, 바나나는 베어 낸 만큼이 없어진 채로 줄곧 b까지 이동할 수 있다. 따라서 과정1은 인과적 과정이다. 바나나가 이동한 것이 바나나가 b에 위치한 결과의 원인인 것이다. 한편, 바나나의 그림자가 스크린에 생긴다고 하자. 바나나의 그림자가 스크린상의 a′지점에서 b′지점까지 움직이는 과정을 과정 3이라 하자. 과정 1과 과정 2의 교차 이후 스크린상의 그림자 역시 변한다. 그런데 a′과 b′사이의 스크린 표면의 한 지점에 울퉁불퉁한 스티로폼이 부착되는 과정4가 과정3과 교차했다고 하자. 그림자가 그 지점과 겹치면서 일그러짐이라는 표지가 과정 3에 도입되지만, 그 지점을 지나가면 그림자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고 스티로폼은 그대로이다. 이처럼 과정3은 다른 과정과의 교차로 도입된 표지를 전달할 수 없다.

-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 -

과정은 대상의 시공간적 궤적이다. …은 물론이고 …도 … 과정인 것이다. 그런데 모든 과정이 인과적 과정은 아니다.

개념은 내포와 외연을 갖고 있다. 예컨대 ‘짐승’이라는 개념의 대표적인 내포는 ‘이동’이고, 그 개념은 ‘철수 샘, 참새, 고래, …’라는 외연을 갖고 있다. 따라서 개념을 생각하며 읽어야 하는 글에서는 내포(속성)와 외연(사례)을 같이 생각해야 한다.

이 글에서 제시된 개념은 ‘과정’이다. 그것은 ‘일이 되어 가는 경로’라는 사전적 의미와 달리, ‘대상의 시공간적 궤적’이라고 정의되었다. 정의가 곧 내포이므로 ‘과정’의 내포는 ‘대상의 시공간적 궤적’이다. 그러면 ‘과정’의 외연은 무엇일까? 이 글에서 ‘날아가는 야구공… 땅에 멈추어 있는 공…도 과정’이라고 하였다. (야구)공이 날아가는 것과 멈추어 있는 것이 외연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개념을 구체화하기도 한다.
[신철수 쌤의 국어 지문 읽기] 넌 개념에서 뭘 생각하니? 난 그 속성과 사례를 생각해
위의 표에서 ‘짐승’에서 ‘길짐승’을 거쳐 ‘인간’으로 갈수록 내포의 수가 하나[이동]에서 셋[이동, 땅, 생각]으로 늘어나고, 외연은 제외되는 것[소, 참새, 나비, 고래, 가재 등]만큼 그 수가 줄었다. 이런 사고를 구체화라 하는데, 일상생활에서는 ‘(범위를) 제한(국한, 한정)한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짐승’에서 ‘날짐승’, ‘참새’로, ‘짐승’에서 ‘물짐승’, ‘고래’로 구체화할 수 있다.

이 글에는 ‘모든 과정이 인과적 과정은 아니다’라고 했는데, 이는 글쓴이가 ‘과정’ 중 ‘인과적 과정’이라는 개념으로 구체화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면 ‘인과적 과정’의 내포는 무엇일까? 이 글에는 ‘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과정’이라는 정의가 언급되었다. 따라서 ‘인과적 과정’은 ‘과정’의 내포인 ‘대상의 시공간적 궤적’에 ‘표지 전달’이 덧붙여져 내포의 수는 늘고, 반대로 ‘과정’의 외연 중에 ‘인과적 과정’의 외연이 아닌 것이 있게 된다.

이때 우리가 신경써야 할 것은 ‘A는 물론이고 B도’라는 문장 구조이다. 이때 A와 B는 반대 관계에 있는 경우가 많다. 이 글에서도 ‘날아가는 야구공은 물론이고 땅에 멈추어 있는 공도’라고 하였는데, 날아가는 것과 멈추어 있는 것은 반대의 상황이다. 그렇다면 어느 하나는 ‘표지를 전달할 수 있’고 어느 하나는 ‘표지를 전달할 수 없’는 것이 되어, 인과적 과정의 외연에서 제외된다.
[신철수 쌤의 국어 지문 읽기] 넌 개념에서 뭘 생각하니? 난 그 속성과 사례를 생각해
이상의 내용을 읽을 때 위에 있는 벤다이어그램과 판정도를 이용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가령

수능 국어에서는 고등학교 수준을 넘어서는 추상적인 개념은 충분히 설명해 준다고 했고, 그 대표적인 방법이 사례를 드는 것이라 했다. 이 글에서도 ‘가령’이라는 말을 앞세우며 사례를 들어, ‘두 과정이 교차…에서 표지, 즉 대상의 변화된 물리적 속성이 도입되면 이후의 모든 지점에서 그 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과정이 인과적 과정이다’라는 추상적 진술을 설명하고 있다.

우선 ‘두 과정이 교차’하는 것의 사례로 무엇을 들었는지 알아 보자. 이 글에서는 ‘과정 1’과 ‘과정 2’, ‘과정 3’과 ‘과정 4’를 사례로 들었다. 다음으로 ‘대상의 변화된 물리적 속성’, 즉 ‘표지’의 사례를 찾아 보자. 그것은 ‘과정 1’과 ‘과정 2’가 교차한 이후의 ‘베어 낸 만큼이 없어진’ 것과, ‘과정 3’과 ‘과정 4’가 교차한 이후의 ‘일그러짐’이다. 그럼 ‘이후의 모든 지점에서 그 표지를 전달’하는 것의 사례는 무엇일까? ‘과정 1’과 ‘과정 2’가 교차한 이후의 ‘(바나나가 베어낸 부분이) 없어진 채로 줄곧 b까지 이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과정 3’과 ‘과정 4’가 교차했을 때는 그 사례가 없다는 것이다. ‘그림자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고 스티로폼은 그대로이다’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일그러짐’이라는 표지가 전달되지 않는다고 했기 때문이다.
[신철수 쌤의 국어 지문 읽기] 넌 개념에서 뭘 생각하니? 난 그 속성과 사례를 생각해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표지의 전달’에서 ‘일그러진 채로 b′까지 이동’과 같은 사례가 없으므로 그래서 과정 3은 인과적 과정이 아니다.

인과적 과정

원인과 결과, 즉 인과(因果)가 뭐 그리 대단하기에 이리 어려운 말로 설명하는 것일까? 15세기 이전에 세계를 이해하는 방법은 신화와 종교였다. 호랑이에게 쫓긴 오누이가 하늘로 올라가 해와 달이 되었다는 것과, 하느님이 빛이 있으라 했기에 해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신화와 종교에 입각해 세상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후 우리는 해가 핵융합에 의해서, 달은 햇빛이 반사되어 빛을 발한다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자연 속에 일어난 일들만을 원인과 결과로 짝지어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과학이라 한다. 따라서 인과가 무엇이고, 그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를 검토하지 않으면 과학은 믿을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이런 주제는 일상생활과 거리가 먼 것이어서 그것을 설명하는 글들은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나 철학적 배경을 생각하며 읽어야 할 글이 있음을 알아야 글 읽기 능력이 향상됨을 명심하자.

☞ 포인트

신철수 성보고 교사
신철수 성보고 교사
① 개념을 생각할 때 내포(속성)와 외연(사례)을 같이 생각하자.

② 구체화하면 내포의 수는 늘고 외연의 수는 줄어듦을 알아 두자.

③ ‘A는 물론이고 B도’라는 문장 구조에서 A와 B는 반대 관계에 있는 경우가 많음을 알아 두자.

④ 벤다이어그램을 그려가며 추상적 진술과 사례를 이해하는 연습을 많이 하자.

⑤ 신화와 종교로 세상을 이해하던 인간은 15세기 이후 과학을 발전시켜 자연 속에 일어난 일들만을 원인과 결과로 짝지어 세상을 이해해 왔음을 알아 두자.

※여기에 제시된 그림들은 글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실제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