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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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일본 고베에서 태어난 벨기에 작가 아멜리 노통브는 프랑스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행보를 보이는 건 외교관 아버지 덕분이다. 아멜리 노통브는 아버지의 임지인 일본, 중국, 미국, 방글라데시, 보르네오, 라오스 등지를 돌아다니며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작가들의 작품에는 자신들의 경험이 어떤 형태로든 녹아들기 마련이다. 2000년에 발표한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의 화자는 세 살짜리 어린아이이며 작품의 무대는 일본이다. 자신이 태어난 일본을 아름답게 묘사하면서 ‘나는 일본 사람이었다. 두 살 반에, 간사이 지방에서, 일본인이라는 것은 아름다움과 경배 속에서 사는 것을 뜻했다’라고 표현했다.

이 소설의 첫 장에 기록된 ‘태초에 아무것도 없었다’ ‘신은 절대적인 만족이었다’는 문장에서부터 독자는 다양한 상상을 하게 된다.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은 46개의 언어로 번역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그 이유는 ‘독창적인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신랄하고도 빈틈없는 문체, 인간 내면을 한없이 파고드는 과감한 주제 선택’ 때문이다.

화이트 초콜릿을 먹고 깨어나다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세 살 아이가 바라보는 흥미롭지만 위험한 세상
첫 장부터 비유와 상징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 소설의 주인공은 태어나서 삼키고 소화시키고 배설만 해 파이프라는 이름을 얻는다. 울지도 움직이지도 않고 소리도 내지 않아 의사가 식물인간으로 판정한 파이프는 두 살이 되면서 고래고래 소리 질러 부모를 당황시킨다. 파이프는 가족들처럼 자신도 말하고 싶지만 잘 안되자 더 격하게 노여움을 표출한다. 자신을 막강한 힘을 가진 신이라고 생각하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아 분통을 터트린 것이다.

파이프는 벨기에 할머니가 가져온 맛있고 달콤한 화이트 초콜릿을 먹고 ‘쾌락은 정말 기가 막힌 거야. 내가 나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잖아. 난, 쾌락의 발원지야’라며 얌전하고 기분 좋은 아이로 변신한다. 말도 할 줄 알고 어느 순간 책도 읽게 되지만 그 사실을 숨기는 세 살 아이의 독특한 시선과 표현, 이것이 다른 소설들과의 차별화 지점이다. 모든 것이 처음인 아이가 대하는 세상은 몹시 흥미로우면서 신선하다.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에서는 일본인이 겪은 역사적 아픔을 파이프의 집에 상주하는 두 명의 도우미를 통해 그려낸다. 일본인 특유의 친절과 성실성이 몸에 밴 니쇼상은 파이프를 진심을 다해 돌본다. 일본 패전 전에 귀족이었던 카시마상은 자신이 도우미가 된 건 백인들의 횡포 때문이라 여겨 늘 불만에 차 있다. 카시마상의 괴롭힘에 니쇼상이 집안일을 그만두려 하자 파이프가 울며 부모에게 말려달라고 했고 그 과정에서 만남과 이별, 언젠가 일본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세 살 인생이 만난 이별과 공포

세 살 인생을 통틀어 최고의 충격을 받은 파이프는 징그러운 잉어에게 밥을 주다가 구토를 한다. 두 다리가 자신을 지탱하지 못하자 더 이상 버티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 순간 연못에 빠지면서 돌바닥에 머리가 부딪힌다. 물속에 누워 편안하다고 생각하는 파이프를 발견한 카시마상은 웃으며 지켜보다가 그냥 가버린다. 니쇼상에게 발견된 파이프는 겨우 목숨을 건진다.

3년의 인생, 그 가운데서도 다디단 화이트 초콜릿을 먹고 정신을 차린 후 겪은 1년이 달콤하지만은 않다. 세 살 아기가 툭툭 던지는 삶과 죽음, 존재와 불안, 신으로 착각하며 뱉는 말들, 나의 첫 기억을 생각하며 읽으면 신비로운 파이프의 경험에 어쩐지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아멜리 노통브는 매년 작품을 발표할 정도로 다작하는 작가다. 작품들이 그리 길지 않으면서 재미있는 데다 독특한 시선과 색다른 분석이 매혹적으로 배치돼 있다.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에서 《두려움과 떨림》으로 독서를 이어가면 흥미로울 것이다. 《두려움과 떨림》은 동경해 마지않던 일본에 가서 아멜리 노통브가 직접 체험한 내용을 담은 자전적 소설이다.

이근미 작가
이근미 작가
세 살의 파이프는 자신을 일본 사람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일본을 사랑하지만 《두려움과 떨림》의 주인공은 시니컬한 시선으로 일본 사회의 경직성을 고발한다. 탁월한 외국어 능력을 가진 벨기에 여성이 매일 똑같은 서류를 수십 차례 복사하고 숫자들을 다시 베껴 적는 단순 노동을 하다가 화장실 청소 일로 옮겨가는 과정을 차가운 문체로 그렸다.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에 이어 《두려움과 떨림》을 읽으면 아멜리 노통브에 이어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도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