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美애널리스트 신순규 "견고한 삶 살면 코로나 이길 수 있어요"
“거의 44년이나 빛을 보지 못하는 생활을 해왔지만 내 세계가 깜깜하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습니다. 속상하고 희망이 없다고 낙담하면 어두운 회색 톤이다가도 아이들과 같이 놀거나 희망을 느끼면 눈앞에 밝은 빛이 빛나는 것 같아요. 많은 사람이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어두움 속에서도 밝게 빛나는 견고한 삶의 가치를 찾길 바라는 마음에서 책을 냈습니다.”

신작 에세이집 《어둠 속에 빛나는 것들》(판미동 펴냄)을 출간한 미국 월스트리트의 시각장애인 애널리스트 신순규 씨(54·사진)는 14일 이렇게 말했다. 책 출간에 맞춰 방한해 이날 온라인으로 마련한 기자간담회에서였다. 그는 시련을 극복할 힘을 주는 견고한 가치를 거듭 강조했다. 신씨의 이번 에세이집은 2015년 같은 출판사에서 낸 《눈 감으면 보이는 것들》에 이어 두 번째다.

신씨는 아홉 살에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13세 때 미국 피아노 순회공연 중 한 맹인학교 초청으로 15세에 홀로 도미했다. 하버드대(심리학 학사), 매사추세츠공대(경영학·조직학 박사) 등 명문대를 졸업한 뒤 월가 최초의 시각장애인 애널리스트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JP모간과 브라운브러더스해리먼 등 유명 투자은행에서 27년째 회사채 담당 애널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그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죽음이 주변에 널리 퍼진 상황을 접한 뒤, 어떤 가치들이 우리의 삶이 흔들리지 않도록 지탱해 주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책을 썼다. 사랑과 행운, 감사, 건강, 소신, 인간관계 등 33개 키워드를 주제 삼아 편안하고 간결한 문체로 담담하게 풀어냈다.

그가 일관되게 주목하는 가치는 ‘견고함’이다. 외부 충격에 연약한 현대인들이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 짙은 ‘어둠’에 대처하고 극복하는 방법이 ‘견고하게’ 살아가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위기에 봉착할 때 삶의 견고성이 빛을 발한다는 것이다.

“회사의 성장성에 중점을 둔 주식 애널리스트와 달리 회사채 애널리스트는 기업의 모든 것을 살피죠. 그런 면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이 해당 기업이 얼마나 견고한가 여부입니다. 그런 직업적 특성이 팬데믹(대유행)이라는 외부 쇼크가 닥쳤을 때 사람들이 견뎌내는 견고함으로 눈을 돌린 이유인 것 같습니다.”

견고함의 의미에 대해선 “과거 한국에서 강조됐던 정신력으로 버티는 강인함이 아니라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유연성 있게 대처해 생존한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견고함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불가능할 거라는 주변의 우려에도 강인한 소망을 품고 이뤄내겠다는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다. 같은 맥락에서, 세상의 불공평함에 대해 불평만 하지 말고 불공평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그는 힘줘 말했다.

“지나치게 공평만 고집하거나 ‘살 만한 세상이 아니다’고 불평하는 것은 모두 극단적인 태도입니다. 공평을 주장하는 것도 좋지만 불공평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실천해 나가는 게 필요해요. 견고한 삶을 선택하고 연약한 삶을 거부하면 희망이 찾아올 겁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