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 1조 작업 편성 등 경영 책임자 의무인지도 불명확
직업성 질병에선 뇌심혈관계 질환 제외…과로 방치 우려

내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정부가 법의 일부 내용을 구체화한 시행령 제정안을 마련했지만, 여전히 모호한 부분이 많아 논란이 예상된다.

노동계는 시행령 제정안이 법 적용 대상을 축소해 실효성을 떨어뜨렸다고 비판한다.

반면 경영계는 경영 책임자 등에게 과도한 책임을 지울 우려가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중대재해법 시행 6개월 남았는데…경영책임자 범위 등 모호해 논란
◇ 인력 편성 의무에 2인 1조 작업 포함 여부 등 불명확
정부는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어 중대재해법 시행령 제정안을 공개했다.

제정안은 오는 12일부터 다음 달 23일까지 입법 예고 기간 의견수렴을 거쳐 확정된다.

중대재해법의 적용 대상인 중대 재해는 중대 산업재해와 중대 시민재해로 나뉜다.

중대 산업재해는 ▲ 사망자 1명 이상 ▲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2명 이상 ▲ 동일한 유해 요인에 따른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 3명 이상 등에 해당하는 산재를 가리킨다.

중대 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의 경영 책임자와 사업주 등이 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등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날 경우 중대재해법의 처벌 대상이 된다.

이에 따라 경영 책임자 등의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의무 등을 시행령에서 어떻게 구체화하느냐가 노사 간 첨예한 쟁점이 됐다.

시행령 제정안은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의무에 안전보건에 관한 인력·시설·장비 등을 갖추는 데 적정한 예산을 편성하는 것을 포함했지만, 구체적인 기준은 제시하지 않았다.

안전보건에 관한 인력의 경우 노동계가 요구해온 2인 1조 작업과 신호수 투입 등이 포함되는지도 불명확하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2인 1조 작업이 바로 포함된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과정에서) 그것(2인 1조 작업)에 필요한 예산 조치를 해야 하는 것으로 해석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시행령 제정안은 상시 노동자 500인 이상 사업장과 시공 능력 200위 이내 건설사에 안전보건 전담 조직을 설치하는 것도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의무에 포함했다.

또 기업이 일부 업무의 도급 등을 한 경우 해당 업무 종사자의 재해 예방 조치와 안전보건 관리 비용 등을 확인·점검하도록 규정했다.

하청 업체 노동자에 대한 경영 책임자 등의 의무를 구체화한 것이지만, 안전보건 관리 비용 등의 적정 수준을 명시하지는 않았다.

하청 노동자 보호 장치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중대재해법은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관리상 조치도 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해당 법령에서 근로기준법은 제외될 전망이다.

근로기준법의 규율 대상인 장시간 노동과 직장 내 괴롭힘 등의 예방 조치를 중대재해법상 경영 책임자 등의 의무에 포함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정부 관계자는 안전보건 관계 법령으로 산업안전보건법, 원자력안전법, 선박안전법 등을 꼽으며 "근로기준법이 관계 법령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시행령 제정안이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인 경영 책임자의 범위를 구체화하지 않은 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이날 논평에서 "경영 책임자의 개념과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중대재해법상 의무 주체가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중대재해법 시행 6개월 남았는데…경영책임자 범위 등 모호해 논란
◇ 직업성 질병 24개 항목으로 제한…뇌심혈관계 질환 제외
시행령 제정안이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인 직업성 질병으로 급성중독 등 24개 항목을 규정하고 뇌심혈관계 질환 등을 제외한 것도 논란이다.

과로가 주원인인 뇌심혈관계 질환을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면 산업 현장에 만연한 과로를 방치할 수 있다는 게 노동계 주장이다.

다만 노동자가 과로로 사망할 경우에는 경영 책임자 등을 중대재해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시행령 제정안이 규정한 직업성 질병으로 중대 산업재해 요건을 충족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라며 "직업성 질병으로 인한 중대 산업재해에 면죄부를 준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시행령 제정안이 규정한 직업성 질병에는 '덥고 뜨거운 장소에서 하는 업무로 발생한 열사병'은 포함됐다.

제정안은 또한 중대 재해가 발생할 경우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보건 경영, 관계 법령 내용, 정부 정책 등에 관한 안전보건 교육을 20시간 범위에서 이수하도록 했다.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가 부과된다.

경총은 "유죄 확정 여부와 관계없이 중대 산업재해가 발생했다는 사실만으로 경영 책임자가 무조건 20시간 이내 안전보건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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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대 시민재해 적용 대상서 건물 철거 현장은 제외
시행령 제정안은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인 중대 시민재해의 범위 등도 구체화했다.

중대재해법은 중대 시민재해를 공중이용시설과 공중교통시설 등의 관리상 결함 등으로 사망자나 일정 기간 이상 치료가 필요한 다수의 부상자, 질병자가 발생한 재해로 규정하고 있다.

시행령 제정안은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인 공중이용시설에 실내공기질관리법상 다중이용시설을 대부분 포함하되 실내 주차장, 오피스텔, 주상복합, 전통시장 등은 제외했다.

시설물안전법상 시설 중 1∼2종은 대부분 포함되지만, 수문과 배수 펌프장 등은 빠졌다.

다중이용업소법상 영업장은 23종 모두 포함됐다.

주유소, 가스 충전소, 종합유원시설(놀이공원) 등도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이다.

거주 공간인 아파트는 공중이용시설에 해당하지 않는다.

건물 철거 현장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광주 동구에서 발생한 철거 건물 붕괴 참사와 같은 사고는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얘기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