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 1~9호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의 공사채 발행 규모가 지난달 말 처음으로 2조원을 넘어섰다. 지하철 요금이 장기간 동결되면서 적자가 만성화한 가운데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로 이용객 감소까지 겹친 탓이다. 용답동 서울교통공사 전경. /김병언 기자
서울지하철 1~9호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의 공사채 발행 규모가 지난달 말 처음으로 2조원을 넘어섰다. 지하철 요금이 장기간 동결되면서 적자가 만성화한 가운데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로 이용객 감소까지 겹친 탓이다. 용답동 서울교통공사 전경. /김병언 기자
서울교통공사의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은 정부와 서울시가 ‘땜질 처방’으로 사태를 키웠기 때문이란 지적이 많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재정이 급격히 악화한 서울교통공사에 일시적 부채비율 규제 완화, 단기 차입 제공 등 ‘빚 돌려막기’ 미봉책을 써 위기를 모면하는 데 급급했다는 분석이다. 서울교통공사는 노조와의 인력 구조조정 합의를 전제로 오는 9월 7000억원의 추가 공사채 발행을 계획하고 있다. 채권 발행에 실패하면 경영상 어려움이 가중될 전망이다.

반복되는 공사의 유동성 위기

6일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공사의 부채비율은 6월 말 사상 최고치인 135.5%로 치솟았다가 7월 1일 기준 116%로 낮아졌다. 서울시가 내년과 2023년 단계적으로 넘겨받기로 했던 4530억원 규모 도시철도공채를 미리 떠안은 결과다. 서울교통공사의 부채비율이 행정안전부의 공사채 발행 허용 한도인 130%를 넘어서자 이를 낮추기 위해 시가 2년치 공채를 미리 이관받은 것이다.

그 결과 공사의 유동성에는 일시적으로 숨통이 트였지만, 재무구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공사 관계자는 “하반기에 공사채를 발행하면 다시 한도인 130% 위로 부채비율이 올라갈 수 있다”며 “내년엔 어떻게 자금난을 해결할지 암담하다”고 말했다.
서울지하철 '빚 돌려막기' 임계점…9월 추가수혈 못하면 위기
서울지하철 1~9호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는 만성적인 적자 구조다. 65세 이상 무임승차, 환승 할인 등에 따른 손실이 매년 5000억원에 달한다. 지하철 이용객은 코로나19 이후 급격히 줄었다. 하루평균 수송 인원은 2019년 730만 명에서 2020년 545만 명, 올 6월 537만 명으로 감소했다.

행안부는 공사의 재정난을 덜기 위해 재무건전성 지표를 완화해줬다. 전국 6개 교통공사 중 서울교통공사에 대해서만 부채비율 한도를 130%로 높여줬고,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추가 발생한 운영비에 대해 공사채 발행을 허용했다.

서울시는 자금 수요가 몰리는 연말마다 공사에 만기 1~2개월짜리 단기 융자를 수천억원씩 빌려줬지만 공사의 재정난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행안부 관계자는 “앞으로 공사가 공사채를 추가 발행하려면 자구 노력이 전제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정 지원·요금체계 개편 필요”

서울교통공사는 연말 자금 수요를 맞추기 위해 9월 7000억원의 공사채 발행을 추진할 계획이다. 다만 행안부로부터 발행 승인을 받으려면 인력 구조조정 등 자구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9월 전 노조와의 협상에 진전이 있어야 하는 이유다. 그동안 공사 노사가 진행한 두 차례의 본교섭은 결렬됐으며 최근까지 이뤄진 실무교섭에서도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공사 관계자는 “지금은 노사 간 협의가 답보상태지만 9월 전에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는 중앙정부에 65세 이상 지하철 무임승차에 대한 재정 지원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지하철 무임승차 정책은 노인복지법 등에 따른 국가 정책인 만큼 국비를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임승차 손실 보전방안을 담은 도시철도법 개정안은 지난해 기획재정부 등의 반대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속 계류되다 결국 폐지됐다.

서울시 내부에선 “대중교통 요금을 조정할 기회를 두 번이나 놓쳤다”는 고백도 나온다. 2019년 수도권 버스 파업 우려로 이재명 경기지사가 경기도 버스요금을 200~400원 인상했을 당시 서울시 내부에선 버스요금과 지하철 요금을 함께 올려야 한다는 실무 의견이 보고됐다. 하지만 고(故) 박원순 시장은 대중교통 요금을 인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두 번째 실기는 권한대행이 서울시 수장이었을 때다. 서정협 시장 권한대행은 대중교통 요금 인상을 논의 테이블에 올렸지만 결국 시의회에 막혀 포기했다.

전문가들은 “더는 대중교통 적자를 지방자치단체에만 맡겨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갑성 연세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공공재인 지하철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서는 미국과 유럽처럼 정부가 재정적으로 지원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선거 등 이벤트에 휘둘리지 않도록 요금 조정체계 개편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신해 서울연구원 교통시스템 선임연구위원은 “영국 런던, 홍콩 등과 같이 물가 상승률, 인건비 등에 대중교통 요금을 연동해 정기적으로 인상 또는 인하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