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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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인사와 관련하여 말씀드리면, 인사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여 다소 섭섭한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김오수 검찰총장이 지난 1일 ‘중간간부 전출인사 당부말씀’에서 한 말입니다. 김 총장은 “저도 이번 인사 내용을 보면서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고도 말했습니다. 최근 단행한 역대 최대 규모(총 662명)의 중간 간부 인사를 두고 한 말입니다.

이번 인사의 핵심은 정권 관련 수사를 맡았던 수사팀장이 모두 교체됐다는 점입니다.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을 수사하던 이상현 대전지검 형사5부장은 서울서부지검 형사3부장으로 이동했습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의혹을 수사하던 이정섭 수원지검 형사3부장은 대구지검 형사2부장으로 갔습니다. 청와대 기획사정 의혹을 수사하던 변필건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은 창원지검 인권보호관으로 발령났습니다. 이들은 필수보직 기간 1년도 채우지 못했습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정권 수사팀장만 교체하면 눈치가 보이니 아예 대대적인 인사를 해서 물타기를 시도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습니다.

대대적 인사를 하는 김에 주요 요직을 현 정권에 충성심 높은 검사들로 채우는 성과도 거뒀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박은정 법무부 감찰담당관이 성남지청장으로 영전한 겁니다. 성남지청장은 검사장 승진 코스의 정석으로 불리는 보직입니다. 박 검사는 추미애 전 장관 시절 윤석열 전 총장 징계 실무를 맡았습니다. 물론 이 징계 시도는 실패로 끝났고, 문재인 대통령이 사과까지 귀결됐습니다. 윤 전 총장이 대선주자로 우뚝 서는 스모킹건 역할도 했죠. 징계까진 아니어도 인사상 불이익을 받아야 마땅한 상황에 엘리트 승진 코스에 입성한 셈입니다.박 검사 후임으로 법무부 감찰담당관이 된 인물은 임은정 대검 감찰연구관입니다. 이 정도면 전형적인 ‘코드인사’라 불러도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글의 서두에서 소개한 김오수 총장의 발언이 나온 배경은 ‘막장 인사’라고 불리는 이번 검찰 인사를 두고 안팎에서 들려오는 비판과 실망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이번 검찰 인사를 두고 “사적인 것은 단 1g도 고려되지 않았다”고 말 한 바 있습니다. 그의 말대로 사적인 것은 정말 고려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다만, 정권 수호를 위한 정치적 고려는 무겁게 했을 것 같다는 의심이 듭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여당 국회의원입니다.” 박 장관이 지난 2월 한 말입니다.

‘검찰 개혁’, ‘조직 혁신’이라는 단어를 최근 수없이 들었습니다. 고위 간부 및 중간 간부 인사를 통해 혁신적인 인사를 목도했다는 게 법조계 다수 관계자들의 의견입니다. △능력과 무관하게 충성도 높으면 중용한다 △기소된 피고인이라 해도 중용한다는 ‘뜻밖의 인사 원칙’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전례를 찾기 힘든 파격적인 인사라는 비아냥 섞인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최근 서울고검장으로 승진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박범계 장관 모두 현재 피고인 신분입니다.

“기소만 되도 불이익을 주겠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이 강조했던 선언이 떠오릅니다. 당시 당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입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건지 묻고 싶습니다.

김오수 총장은 한 발 더 나아갔습니다. 다시 '당부말씀'으로 돌아가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어디에서 근무하든 국민 중심으로 창의적이고 성실하게 근무하면 반드시 제대로 평가받고 다음 인사에 반영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두 가지 의미를 해석할 수 있습니다. 먼저 '제대로 평가하지 않은' 인사 사례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겁니다. 또 다른 하나는 '현 정권에 충성한다면 다음 인사 때 확실하게 보상해주겠다'는 행간 입니다. 여기서 '국민'은 '국민=다수당=여당=현 정권'이라는 수식으로 풀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한 해석일까요.

노자는 지도자를 4가지 유형으로 분류했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지도자는 △존재 정도만 알려진 지도자입니다. 그 다음으로 △칭찬받는 지도자 △두려워하는 지도자 △업신여김을 받는 지도자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선 상당수의 사람들이 검찰총장은 물론 법무부 장관과 서울중앙지검장의 이름까지 훤히 알고 있습니다. 또 법조계 지도자들이 수사를 받고 있거나 거짓말 논란 등으로 비난과 사퇴 압력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분명 노자가 으뜸으로 생각하는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굳이 옛 성현들의 말씀이 아니어도 이상적인 사회는 ‘법 없이도 사는 세상’일 겁니다. 태평성대에선 지도자의 이름조차 알지 못한다 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법조계가 돌아가는 모양새는 마치 ‘법이 없는 것처럼 사는 세상’ 같습니다. 법무부의 법무(法務)는 법치를 힘써 행한다는 뜻입니다. ‘法無’가 아닌 ‘法務’가 현실에 안착하는 사회를 꿈꿔 봅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