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초등학교에 진안할망당이 자리 잡은 사연

지난달 27일 찾은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초등학교.
[다시! 제주문화](13) 학교를 품은 수산진성에 얽힌 슬픈 제주신화

제주에 있는 많은 학교 중에서도 아름답기로 소문난 이 학교는 푸른 천연 잔디 운동장과 아담한 정원, 한눈에 보기에도 오래돼 보이는 나무들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무엇보다 학교를 둘러싼 담장이 범상치 않았다.

조선시대에 축조된 수산진성(水山鎭城)으로, 담장 자체가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62호로 지정된 문화재였던 것.
600년 가까이 된 진성은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도록 학교를 품고 있었다.

학교를 품은 성과 성에 안긴 학교는 이질감 없이 서로에게 녹아들어 하나가 됐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건물 동편에 있는 감귤나무밭을 지나면 커다란 아름드리나무가 지키는 신당(神堂)이 있다.

'진안할망당'이다.

신당을 둘러싼 돌담은 언뜻 보기에도 수산진성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듯했다.

유교를 숭상한 조선시대,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진성에 신당이 들어선 데는 어떤 사연이 담겨있는 것일까.

[다시! 제주문화](13) 학교를 품은 수산진성에 얽힌 슬픈 제주신화

◇ 수산진성에 신당이 자리 잡은 사연
마을에는 수산진성, 진안할망당과 관련한 슬픈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수산진성은 1439년 조선 세종 때 왜구의 침임을 막기 위해 제주 정의현에 쌓은 방어유적이다.

일본과 가까운 제주에서는 왜구가 빈번히 출몰해 백성들의 재산을 빼앗고 죽이거나 아녀자들을 겁탈하는 등 큰 피해가 발생했다.

백성을 지키기 위해 성을 쌓기 시작했지만, 이 역시 백성들에겐 여간 어려움이 아니었다.

많은 백성이 부역에 동원됐고, 관아에서는 각 집에서 곡식 등을 거둬갔다.

그런데 유독 마을의 한 여인만은 아무것도 나라에 바칠 것이 없었다.

가난한 살림에 남편까지 잃어 어려운 삶을 이어가던 여인은 자포자기 한 채 "피죽 한 그릇도 제대로 못 먹는 신세라 바칠 것은 제 딸 아이 하나밖에 없다"며 넋두리를 쏟아냈다.

관원들도 여인의 딱한 처지를 이해하고 빈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 공사장에는 원인 모를 사고가 속출했다.

성을 쌓기만 하면 곧 무너져 내리는 것이었다.

다시 단단하게 쌓아 올려도 무너지기는 마찬가지였다.

부역에 동원됐던 사람들은 '신의 노여움을 샀다'며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다시! 제주문화](13) 학교를 품은 수산진성에 얽힌 슬픈 제주신화

관원들은 더는 공사를 진척시킬 수 없어 고심하던 차에 근처를 지나던 승려가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내뱉고 사라졌다.

"딸 아이 말곤 바칠 것 없다던 여인의 넋두리가 토신에게 미쳤는데, 그 집 딸을 제물로 바치면 진성이 완성될 것이오."
관원들은 여자아이를 축성의 제물로 바쳤다.

승려의 말이 맞았던 것일까.

수산진성 공사는 이후 사고 없이 마무리됐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여자아이의 울음소리가 성안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 원인을 찾던 마을 사람들은 마침내 공사 과정에서 희생된 여자아이를 떠올렸다.

결국 마을 사람들의 간곡한 청으로 관아에서도 진성 외곽에 희생된 아이의 혼과 넋을 달래는 신당을 만들도록 허락했다.

마을 사람들은 여자아이를 '수산진성 안에 모신 여신'이라는 의미로 '진안할망'이라고 부르며 때마다 제를 지냈다.

진안할망당이 수산진성에 들어선 사연이다.

왜구의 거듭된 침입 속에서 생존을 위해 성벽을 쌓아야 했던 절박함, 성벽을 만들기 위해 아이를 제물로 바쳐야 했던 죄책감, 굶어 죽으나 제물로 바쳐져 죽으나 매한가지라 자포자기했던 아이 엄마의 처절함, 무엇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로 희생된 아이의 억울함과 비통함 등이 신화 속에 담겨 있다.

진안할망당은 예부터 수산리 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제주에서는 '할망'을 '여신'의 의미로 사용한다.

신으로 좌정한 어린 여자아이에게도, 아름답기로 유명한 사랑과 농경의 신 '자청비'에게도 '할망'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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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당을 중심으로 이뤄진 마을 공동체
이곳 수산리에는 진안할망당 외에도 수산리본향당이 있다.

수산리본향당은 성산읍 고성리와 오조리, 성산리 등 인근 마을의 수호신을 모신 신당이기도 하다.

마을 사람들은 수산리본향당과 진안할망당 등을 중심으로 끈끈한 유대관계를 이루며 마을을 지키고 있다.

제주신화는 제주 마을에 좌정한 신들의 이야기이며, 그 신앙을 중심으로 살아간 마을 주민들의 삶이 신화 속에 녹아들어 있다.

이방인, 젊은 사람들의 눈에 신당은 별 의미 없는 자연물일 뿐이다.

하지만 단골 마을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처한 불행을 해결하고, 간절한 소망을 비는 신성한 공간이자 신화를 상징하는 실체적 공간이다.

이러한 본향당을 중심으로 마을 공동체가 결속하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신당을 알아야 하는 이유이자 종교 공간으로서 또는 문화재로서 신당을 보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2015년 제주 제2공항 예정지 발표 이후 수산리 마을은 깊은 수심에 빠졌다.

마을 사람들은 공항 활주로로부터 수백 미터 떨어진 지점에 수산초등학교가 자리 잡고 있어 학교가 폐교되는 등 공항 소음으로 마을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며 제2공항 건설을 반대하고 있다.

[다시! 제주문화](13) 학교를 품은 수산진성에 얽힌 슬픈 제주신화

[※ 이 기사는 '제주신당조사'(제주특별자치도, 제주전통문화연구소), '제주도무가본풀이사전'(진성기), '제주 동쪽'(한진오) 등 책자를 참고해 제주신화를 소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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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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