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대전지방법원에 출석한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 당시 법원은 "피의자에게 불구속 상태에서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될 필요가 있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연합뉴스

지난 2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대전지방법원에 출석한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 당시 법원은 "피의자에게 불구속 상태에서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될 필요가 있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연합뉴스

우여곡절 끝에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채희봉 한국가스공사 사장(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등이 재판에 넘겨지면서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이 우선 일단락됐습니다.

월성 1호기의 이용률과 판매단가가 조작되는 과정에 한수원과 산자부, 그리고 청와대까지 얽혀있다는 것이 해당 의혹의 핵심입니다.

2018년 4월 문재인 대통령은 "월성 1호기 가동 중단은 언제 결정하느냐"고 묻습니다. 월성 1호기의 설계수명은 2022년 11월까지입니다.

산자부 A 과장은 "월성 1호기를 2년 반 더 가동하겠다"는 취지의 보고를 올립니다. 그러다 백운규 전 장관으로부터 "너 죽을래?"라는 말을 듣고 '죽을래 과장'이라는 별명을 얻습니다.

그리고 A 과장은 '죽을래 과장'이 된 다음 날, 바로 한수원에 "장관이 즉시 가동 중단으로 결정했으니 월성 1호기는 조금이라도 재가동은 안 된다"고 통보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지난해 10월 감사원이 "정부가 2018년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원전을 계속 가동했을 때의 경제성을 불합리하게 저평가했다"는 감사결과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형사사건으로 비화했습니다.

대전지검은 한수원 본사 등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벌였고 "정부세종청사 산업부 사무실에 들어가 약 2시간 동안 월성 1호기 관련 자료 530건을 지웠다"는 산자부 직원의 진술 등을 확보해 국·과장급 공무원들을 먼저 재판에 넘겼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30일, 그들의 '윗선'이자 청와대와의 '연결고리'인 백운규 전 장관 등을 재판에 넘겼습니다.

여기까지가 월성 1호기 사건의 대략적인 일지입니다.

백운규 전 장관과 채희봉 사장이 재판에 넘겨진 혐의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와 '업무방해' 입니다. 백 전 장관등이 본인에게 주어진 권한을 남용해 한수원으로 하여금 그 의사에 반하게 하는 일(원전 조기폐쇄)을 하게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배임' 혐의를 받습니다. 백 전 장관의 지시에 따라 원전 가동을 즉시 중단함으로써 회사에 1481억원 상당의 손해를 끼쳤다는 혐의입니다.

수도권 검찰청의 한 현직 검사에 따르면 "그나마 법무부는 행정부처 중에서도 청와대에 제 목소리를 내는 곳"이라며 "산자부 같은 곳은 위에서 죽으라고 하면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 지점에 핵심이 있습니다. 백 전 장관은 이 혐의들 외에 '배임교사' 혐의도 받고 있습니다. 정재훈 사장이 배임 행위를 하게끔 교사(타인에게 범죄를 실행하도록 압박하는 행위)했다는 겁니다.

만약 한수원 사장 선에서만 배임죄가 걸렸다면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및 조기 가동중단에 정부의 책임소재가 있다고 명확히 말하기 애매한 상황이 됩니다. 하지만 백 전 장관의 배임혐의가 인정된다면 이는 원전 가동 조기중단이 한수원 차원이 아니라 정부에 책임이 있음을 공식화하는 꼴이 됩니다. 산자부 장관의 배임 혐의는 장관 '개인'의 혐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뉴스1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뉴스1

김오수 검찰총장으로서는 엄청 부담스러운 상황입니다. 대전지검 수사팀은 "백 전 장관에게 배임죄를 걸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입장을 계속해서 전달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윗선의 책임소재가 명확해지므로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등 민사적 소송도 가능해집니다.

이에 대검은 직권으로 검찰 수사심의위원회를 소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공을 밖으로 넘겨 기소 여부 판단을 외부 전문가들에게 맡기겠다는 뜻입니다. 대전지검 수사팀은 "외부 전문가들이 복잡한 배임죄를 판단하는 것은 무리"라며 수심위를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 때문에 지난달 원전 사건 기소를 '앙꼬 없는 찐빵'에 비유했습니다. '앙꼬'는 정권을 정면으로 조준하는 배임죄에 있는데 이에 대한 판단은 외부로 넘겨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는 "배임교사든 배임이든 산자부 장관이 걸리면 그건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는 꼴"이라며 "당연히 윗선 수사도 진행될뿐더러 민사적 손해배상, 추가적인 정책 책임공방 등이 확대될 수 있으니 김 총장 입장에서는 그것만 발라내 수심위로 넘긴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래도 이렇게까지라도 (기소)돼서 다행"이라며 "지금 상황에서는 이것만 해놔도 크다고 봐야죠 뭐"라며 허탈하게 웃었습니다.

수심위를 열기 위해서는 실무적으로 외부 전문가들과 일정을 맞추는 과정 등이 필요하기 때문에 보통 소집결정부터 의결까지 2~3주가 걸립니다. 대검은 "수심위 심의 이후 기소 여부에 대해 결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일단락된 원전 사건이 앙꼬가 있는 찐빵이 될지, 없는 찐빵이 될지 관심이 집중됩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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