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녀 후원했던 캐나다인, 늘그막까지 소녀 찾아
옛 사진 보내주고 화상 통화까지…감동의 '해후'
56년만에 재회한 벽안의 후원자…"기억해줘 감사해요"

"내게도 없는 내 어릴 적 사진을 간직해주셨다는 게 너무 감사하고 눈물이 납니다.

"
대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미숙(가명)씨는 지난 3월 국제구호단체 월드비전으로부터 흑백사진 몇 장을 받았다.

캐나다에서 온 사진에는 한 외국인 청년이 한국인 아이를 안고 밝게 웃는 모습이 담겼다.

'스탠'이라는 이름을 듣자 희미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보육원에서 지내던 어린 시절 후원금과 편지를 보내고 언젠가 직접 찾아오기까지 했던 그 청년이었다.

미소짓고 있는 사진 속 소녀는 잊고 지냈던 유년 시절 자신이었다.

27일 월드비전에 따르면 과거에 김씨와 연을 맺은 스탠은 90세 노인이 될 때까지 '그때 그 한국 소녀'를 잊지 못하다 50여년이 지난 최근 마침내 재회했다.

그는 고령에 지병까지 앓아 혼자 거동하기 어렵고, 기억력과 언어능력도 대부분 상실했지만 사진 속 한국 소녀의 이름만은 또렷이 기억했다.

젊은 시절 부동산 투자회사 브로커로 일했던 스탠은 전쟁 이후 한국 어린이들이 처한 어려움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 월드비전을 통해 후원을 시작했다.

한국의 한 보육원에 사는 소녀에게 편지와 후원금을 보내며 인연을 만든 그는 후원 시작 몇 달 후인 1965년 직접 한국을 찾았다.

수소문 끝에 어렵사리 보육원을 찾아낸 스탠은 당시 소녀였던 김씨를 만나 며칠간 시간을 보낸 후, 세탁기와 피아노를 보육원에 기부하고 캐나다로 돌아갔다.

이후 둘은 연락이 끊겼지만, 스탠은 '한국의 소녀'를 잊지 않았다.

한국 방문 이후 56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는 당시 김씨와 함께 찍은 사진들을 소중히 보관하고 있었다.

스탠의 딸 신디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로부터 후원 아동들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다"며 "아버지는 '한국에도 딸이 있다'고 말씀하셨고, 나 또한 사진 속 아동을 자매처럼 여기며 자랐다"고 말했다.

김씨는 한동안 잊고 살았던 '키다리 아저씨'가 자신을 아직도 기억한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

12살에 양부모에게 입양돼 보육원을 떠난 후 김씨는 스탠과 연락이 끊어졌다.

불행하게도 양부모는 김씨에게 사랑을 주지 않았다.

여러 허드렛일을 모두 김씨에게 시켰고 학교도 보내지 않았다.

22살에 취업해 집을 나오기까지 김씨는 한순간도 쉬지 못하고 노예처럼 살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수십년이 지나 김씨도 자녀와 손주를 둔 할머니가 됐지만, 어릴 적 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한 응어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가족들과 모여 앉아 추억을 되살리며 볼 유년기 사진 1장 없다는 게 그에게는 평생 한이었다.

그런 김씨에게 스탠의 소식은 마치 잃었던 부모를 다시 만난 것처럼 다가왔다.

자신의 어린 시절 사진을 소중히 간직하고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56년만에 재회한 벽안의 후원자…"기억해줘 감사해요"

두 사람은 지난 24일 화상전화로 56년 만에 재회했다.

말을 거의 하지 못하는 스탠 대신 통역사로 나선 딸은 아버지가 평생 소중히 보관한 사진들을 보여줬다.

사진 하나하나에 김씨와의 추억이 담겨 있었다.

비록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스탠 역시 화면으로 보이는 김씨의 모습이 신기한 듯 고개를 앞으로 기울였다.

통화 내내 김씨는 "기억해줘서 감사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스탠과 김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끝난 후 만남을 기약하며 통화를 마쳤다.

후원을 받던 어린 소녀도 다른 아이들의 후원자가 됐다.

김씨는 스탠과 연락이 닿은 후 월드비전을 통해 해외 아동 2명에 대한 후원을 시작했다.

스탠이 그랬던 것처럼 외로운 아이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내어주고, 그들의 인생을 위로해주고 싶다고 김씨는 밝혔다.

"친부모도 버린 나를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해준 스탠 후원자님 덕분에 불행하다고만 생각했던 나의 어린 시절이 행복한 기억으로 바뀌었어요.

그의 사랑과 따듯한 마음이 널리 퍼지도록 이제는 제가 후원을 이어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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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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