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흥례문·강녕전 정비…건물 36동에서 146동으로 늘어
2045년까지 궐내각사·선원전·혼전 영역 등 복원
경복궁 복원 30년…일제가 훼손한 '조선의 상징'을 되찾다
일제가 훼손한 조선왕조 제일의 법궁(法宮, 임금이 사는 궁궐)인 경복궁(慶福宮)이 복원 30주년을 맞았다.

24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경복궁은 조선이 새로운 수도로 한양을 선택한 직후인 1395년 건립됐다.

당시 조선은 경복궁을 중심으로 도시를 설계했다.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경복궁은 1863년 즉위한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 주도로 복원됐다.

하지만 일제는 '조선의 상징'과도 같은 장소인 경복궁을 멋대로 변형시켰다.

전통 전각을 허물어 부재를 팔아넘기고, 으뜸이 되는 건축물인 근정전 앞에 위압적인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었다.

박물관을 세우고, 불교 유물인 탑도 옮겨왔다.

사실상 만신창이가 된 경복궁은 광복 이후에도 한동안 제 모습을 찾지 못했다.

정문인 광화문을 1968년에 복원했다고 했으나, 나무가 아닌 철근과 콘크리트를 사용해 재건했고 위치도 정확하지 않았다.

경복궁 복원 논의는 경제가 급격히 성장한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정부는 1984년 경복궁을 비롯한 5대 궁을 복원하겠다고 발표했고, 이후에도 국가가 주도하는 주요 문화사업에 '경복궁 복원'이 포함됐다.

경복궁 복원 30년…일제가 훼손한 '조선의 상징'을 되찾다
◇ "민족사 긍지 회복" 외치며 복원…침전(寢殿) 권역 공사로 시작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1년 6월 5일 '경복궁 복원 기공식'에 참가해 "우리가 경복궁을 복원하려는 것은 일제에 의해 훼손된 민족사에 대한 긍지를 회복하려는 것"이라며 "역사의 진보와 나라의 발전은 문화전통의 창조적인 계승으로부터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문화재청 전신인 문화재관리국도 1994년 발간한 경복궁 복원정비 기본계획 보고서에서 경복궁 복원이 뒤늦게 시작됐지만, 수도 서울의 면모와 민족정기를 되살리는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경복궁 복원 이유로 '문화민족의 자긍심 고취'를 내세웠지만, 문화재관리국은 복원 이전부터 유교적 공간인 궁궐에 어울리지 않는 탑을 외부로 이전하고 옛 모습을 회복하는 정책을 준비했다.

문화재청 차장을 지낸 김창준 전통건축수리기술진흥재단 이사장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일제강점기 전국에서 가져온 석탑이 근정전 뒤편에 수십 점 있었다"며 "탑은 제 위치에 돌려주고, 궁도 원래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해 1980년대 후반부터 관련 예산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1993년 취임한 김영삼 대통령이 총독부 건물 해체를 지시하고 일제 잔재 청산이라는 국가적 정책 목표를 세우면서 경복궁 복원도 속도를 냈다"며 "경복궁 복원 1차 사업은 기본 궁제(宮制) 완비를 목표로 삼았다"고 덧붙였다.

복원 사업 이전에 경복궁에서 온전히 남은 전각은 근정전, 경회루, 향원정, 수정전, 자경전과 부속 건물 외에는 거의 없었다.

고종 중건 당시 500여 동이던 건물은 36동만 있었다.

문화재청은 먼저 근정전 뒤쪽인 침전(寢殿, 침방이 있는 집) 권역 공사를 시작했다.

이곳에는 본래 왕의 침전인 강녕전과 왕비 침전인 교태전이 있었으나, 두 건물은 1917년 창덕궁 화재 이후 이전됐다.

오늘날 창덕궁 희정당과 대조전은 옛 강녕전과 교태전 부재로 지은 건물이다.

일제강점기 석조 불교문화재 전시장이 된 침전 권역은 1995년 강녕전과 교태전 등이 재건되면서 비로소 제 모습을 찾았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동궁, 흥례문, 태원전 권역 복원이 동시에 진행됐다.

세자가 거처하던 동궁 권역 공사는 1999년 끝났고, 근정전과 광화문 사이에 있었으나 총독부 청사로 인해 훼손된 흥례문 권역 작업은 2001년 마무리됐다.

태조 이성계 초상화를 모신 태원전 권역도 2005년 복원이 끝났다.

경복궁 복원 30년…일제가 훼손한 '조선의 상징'을 되찾다
◇ 광화문·건청궁 복원으로 1차 사업 종료…2045년까지 2차 정비
2010년 광복절에 이뤄진 새로운 광화문 공개는 경복궁 복원 1차 사업의 백미였다.

뒤쪽으로 물러나 있던 광화문은 복원을 통해 제자리로 돌아왔고, 광화문·흥례문·근정문이 일직선을 이루게 됐다.

재질은 콘크리트에서 나무로 바뀌었으며, 박정희 전 대통령 친필 현판 대신 고종 중건 당시 공사 책임자였던 임태영 글씨를 새긴 현판을 걸었다.

2010년 막을 내린 1차 사업 기간에는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길 때까지 생활한 공간이자 명성황후가 시해된 건청궁 권역이 복원됐고, 함화당과 집경당도 세워졌다.

1차 사업으로 경복궁에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 건물은 모두 89동이었다.

문화재청은 2차 사업도 2011년부터 20년간 시행할 계획이었으나, 15년 연장해 2045년 종료하기로 했다.

반면 복원 규모는 대폭 줄여서 건물 80동만 추가하기로 했다.

2차 사업으로 소주방·흥복전 권역 복원이 완료됐고, 향원정 보수는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문화재청은 서울시와 함께 광화문 앞에 월대(月臺, 주요 건축물에 설치하는 넓은 기단 형식의 대)도 만든다.

1차 사업 종료 이후 지금까지 다시 지은 건물은 21동으로, 기존 전각을 합치면 현재 146동이 경복궁에 있다.

내년부터는 궐내각사 영역, 선원전과 만경전 영역, 혼전 영역, 오위도총부 영역이 순차적으로 복원 작업에 들어간다.

1975년 콘크리트로 지은 경복궁의 서문 영추문은 원래 위치를 찾아 목조로 건설하고, 국립민속박물관 자리에는 역대 왕의 초상화를 모신 선원전을 짓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