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상습추행 목사 항소심 재판…신체 감정 두고 공방 이어져
재판부 "피해자에겐 지우고 싶은 기억, 2차 가해" 기각 가닥
성폭력 피해자에 "신체 특징 묻자" vs "기억 못 하면 무죄냐"
교회와 지역아동센터에 다닌 아동들을 상습적으로 추행한 혐의로 법정에 선 70대 목사 측이 무죄를 주장하며 이를 입증할 증거로 피고인의 신체적 특징을 피해자들에게 묻게 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재판부는 범행이 일어난 13년 전 중학생에 불과했던 피해자들이 피고인의 신체 특징을 기억하기 어렵고, 2차 가해 우려가 크다며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형사1부(박재우 부장판사)는 23일 A(70)씨의 청소년성보호법상 청소년 강간 등 혐의 사건 항소심 세 번째 공판을 열었다.

이날 공판에서는 앞선 공판에서와 마찬가지로 A씨 측이 신체 감정과 함께 피해자들에게 피고인의 신체적 특징을 확인해달라고 요청한 것과 관련해 변호인과 검찰·피해자 변호사 간 공방이 벌어졌다.

검찰은 "신체적 특징을 못 봤다고 해서 무죄가 되는 것이 아니고, 2차 가해일 뿐이다"라며 기각을 요청한 반면 변호인은 "피해자들이 수사기관에서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세세하게 진술했기에 신체 특징을 아는 게 상식과 경험칙에 비춰 맞다"고 반박했다.

성폭력 피해자에 "신체 특징 묻자" vs "기억 못 하면 무죄냐"
이에 피해자들의 변호사는 "13년 전에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차 모양 기억 못 하면 교통사고가 없던 게 되느냐"라며 "성기 모양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재반박했다.

이어 "신체 검증은 불필요하고 유해한 절차"라며 "만약 받아들여진다면 앞으로 성범죄 피해자들은 가해자 성기 모양까지 보려고 애써야 한다"고 우려했다.

양 측의 주장을 살핀 재판부는 "13년 전 일인데 피고인의 신체 특징을 기억하기 어렵고, 이는 피해자들에게 지우고 싶은 기억이기도 한데 엄청난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며 신체 검증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뜻을 밝혔다.

변호인이 낸 의견서를 통해 피고인의 신체적 특징을 확인했으나 "기억할만한 특징인지도 알기 어렵고, 지금 물어볼 만한 특징인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변호인 측은 애초에 1차 가해도 없었다고 주장하며 무죄를 입증하려는 시도조차 막힌다면 억울함을 증명하기 어렵다고 호소했으나 재판부는 이의가 있다면 정식으로 신체 검증 신청서를 제출해달라며 다음 기일에 최종적으로 결정하겠다고 했다.

성폭력 피해자에 "신체 특징 묻자" vs "기억 못 하면 무죄냐"
A씨는 2008년 여름 B(당시 17세)양을 사무실로 불러 유사성행위를 하고, 비슷한 시기 B양의 동생 C(당시 14세)양을 상대로도 가슴을 만지거나 사무실로 불러 끌어안은 뒤 입을 맞추는 등 상습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혐의로 기소됐다.

2019년 피해자들의 고소로 법정에 선 A씨는 혐의를 부인했지만, 1심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추행 경위와 방법, 범행 장소의 구조, 범행 전후 피고인의 언행, 범행 당시 느낀 감정 등을 일관되게 진술한 점 등을 근거로 유죄라고 판단해 징역 7년을 선고했다.

판결에 불복한 A씨는 항소했고,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명령 청구 기각에 불복한 검찰도 항소했다.

이날 공판에 앞서 강원여성연대와 기독교반성폭력센터는 춘천지법 앞에서 "A 목사는 피해자에 대한 음해를 즉각 중단하고, 진정으로 반성하고 사과하라"고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어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신체 주요부위를 서술하게 하는 건 성폭력 피해자에게 또다시 고통을 주는 행위"라며 "재판부는 A 목사의 보석 신청을 기각하고, 엄중하게 처벌해달라"고 촉구했다.

다음 공판은 7월 14일 열린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