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발령 재고해주세요. 임신하면 되나요?”

“사업장 내 젠더 갈등으로 인한 고충이 있느냐”는 질문에 한 대기업 인사담당 A임원이 대뜸 꺼낸 말이다. “흔히 있는 경우는 아니지만 직장 내 젠더 갈등의 단면을 보여준 장면이었다”고 했다. A임원은 “직원들 사이에 이 이야기가 돌면서 남성 직원들이 크게 반발해 수습하는 데 애를 먹었다”며 “과거에는 험한 일이나 지방 발령, 숙직 등을 남성 직원들이 군말 없이 했지만, 이제는 세상이 달라져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한다”고 말했다.

기업들도 사업장 내 젠더 갈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작게는 당직 근무에서부터 지방 발령 등 인사 조직관리까지 과거 방식대로 남성 직원 위주로 했다가 곤욕을 치르는 경우가 늘고 있다. 그렇다고 남녀 직원들의 ‘차이’를 배제하고 동일 선상에서 조직관리를 할 수도 없어 기업 인사담당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 자동차 제조 기업 관계자는 “남녀 차별을 없애겠다는 취지로 남성만 있던 부서에 여성 직원을 보냈는데 2년 정도 근무하고 육아휴직을 갔다”며 “그 뒤로 남성 직원들이 일하기 불편하다며 여직원 추가 배치를 꺼리더라”고 했다. 그는 “여성 직원들도 일하기 편하지 않았을 텐데 인사 때마다 신경이 쓰인다”고 덧붙였다.

기업 인사담당자들은 “최근 조직에서 젠더 갈등이 심화한 것은 정부 정책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내각의 30%를 여성으로 채우겠다”고 공언하고 개각 때마다 인선의 중요 기준 중 하나로 삼았다. 2003년 도입돼 2007년까지 한시 운영하기로 했던 양성평등채용목표제는 이후 정권마다 기간을 연장해 현 정부에서도 시행하고 있다.

현 정부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지난해 8월 ‘고용상 성차별 사례집’을 발간해 일선 근로감독관들에게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라 기업의 성차별 근절 지침으로 사용하도록 하기도 했다. 한 대기업 임원은 “여성할당제는 점점 문제가 되고 있는 젠더 갈등을 해소하자는 취지로 도입된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현장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할당, 우선권 등의 용어로 경직되게 작용하면서 능력이 오히려 후순위가 되는 부작용도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서는 젠더 갈등이 향후 기업의 인사·노무관리에서 또 하나의 리스크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젠더 갈등은 아직 성희롱 등 직장 내 괴롭힘 이슈에 묻혀 있지만 법원에서도 차별의 범위를 점점 넓혀가는 추세”라며 “젠더 갈등은 개인 간 사건인 직장 내 괴롭힘 등을 넘어서는 것이어서 한 번 터지면 파급력이 엄청날 것”이라고 말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