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새 만에 완진됐지만 피해 여전…주민 두통 호소·인근 하천서 물고기 떼죽음도
쿠팡, 마장면사무소에 주민피해센터 개설…"보상 절차에 최선 다할 것"

"올벼(제철보다 일찍 여무는 벼)는 곧 이삭이 날 시기인데 작물 위에 잿덩어리들이 떨어져 있으니 제대로 수확은 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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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논밭 곳곳 새카만 잿덩어리…쿠팡물류센터 화재 주민 피해
경기 이천시 쿠팡 덕평물류센터에서 발생한 불이 엿새 만에 완전히 꺼진 22일 화재 현장에서 2㎞ 거리의 6천평 규모 논밭에서 만난 농민 김모(62)씨는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언뜻 봐서는 여느 평범한 논밭 같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니 초록색 벼 사이 사이에는 어른 주먹 크기의 새카만 잿덩어리들이 떨어져 있었다.

논밭 한 가운데에는 50㎝ 크기의 우레탄 폼 잔해가 떨어져 있었고 잿덩어리에 눌려 줄기가 벌어져 있는 벼도 눈에 들어왔다.

김씨는 "이렇게 눌려서 벌어진 벼 줄기는 위로 자라나는 힘을 잃게 돼 잿덩어리를 치워도 나중에 제대로 여물기 어렵다"며 "어제 온종일 100ℓ짜리 종량제 봉투 3개를 가득 채울 양의 잿덩어리를 주웠는데도 남아있는 잔해가 여전히 너무 많다"고 하소연했다.

화재가 발생한 지난 17일 하루 동안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는 문제의 잿덩어리는 스치듯 만져도 새카만 잿가루가 손에 묻어났다.

햇빛을 받은 부분은 유리가루가 박힌 듯 반짝거렸다.

김씨는 "이 물질이 작물에 치명적인 피해를 끼치는 성분으로 이뤄진 건 아닐지 전전긍긍하고 있다"며 "이천은 쌀로 유명한데 이번 화재 피해 때문에 이천쌀을 사람들이 기피할까 걱정 된다"고 말했다.

현재 이천시는 잿덩어리와 분진 등 잔해를 회수해 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에 성분 분석을 의뢰한 상태다.

이천시와 마장면 주민들에 따르면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와 함께 솟구친 잿덩어리들이 10여㎞ 거리의 이천시청까지 떨어지는 등 시가지도 분진 피해를 봤다.

덕평1리의 경우 한동안 온 마을이 연기로 뒤덮이기도 했고 쿠팡물류센터에서 500m 거리의 비닐하우스는 단열재로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우레탄 불티가 날아와 지붕에 지름 15㎝의 구멍이 나기도 했다.

쿠팡물류센터에서 150m 떨어진 야산의 양봉장에서는 49개 벌통이 분진 피해를 봐 모든 개체를 다른 지역으로 옮겨야 할 판이다.

졸지에 이재민이 된 4가구 주민 5명은 지난 17∼18일 마을회관과 경로당에서 밤을 지새웠고 주민 20여명은 두통 등을 호소해 일부는 병원 치료를 받기도 했다.

또 화재 발생 이틀 만인 지난 19일부터 사흘 동안은 현장에서 1㎞가량 떨어진 복하천(폭 20∼50m) 3개 보에서 붕어, 잉어, 피라미 등 물고기 2천 마리가량이 떼죽음을 당했다.

시 관계자는 "사흘간의 물고기 떼죽음은 수질오염 외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며 "불을 잘 끄기 위해 소화수에 천연 계면활성제를 넣는데 이 성분이 공기를 차단해 물고기가 폐사할 수 있는 만큼 쿠팡물류센터 화재진압 과정에서 하천으로 흘러든 소화수가 원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초록 논밭 곳곳 새카만 잿덩어리…쿠팡물류센터 화재 주민 피해
주민 피해가 잇따르자 쿠팡 측은 이천시와의 협의 끝에 이날 오전 9시부터 이천시 마장면사무소 2층 회의실에 주민피해지원센터를 개설해 피해 신고를 받고 있다.

쿠팡 측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께까지 8명의 주민들이 지원센터를 찾았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 여봉환(67)씨는 "불이 난 물류센터에서 2㎞ 떨어진 주택에 살고 있는데 마당에서 키우는 고추, 참깨, 오이 옆에 까만 잿덩어리가 떨어져 모두 폐기해야 한다"며 "집 앞에 세워둔 차에도 잿가루가 내려 앉아 불편이 컸던 만큼 제대로 된 보상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엄태준 경기 이천시장은 22일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사고와 관련해 언론 브리핑을 열어 "사고 원인자인 쿠팡 측은 이천시민의 피해를 최대한 신속히 보상하라"고 요구했다.

쿠팡 관계자는 "주민들의 피해 상황을 면밀히 파악해 적절한 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