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인터넷에 머물던 한국 사회 젠더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분수령이 된 사건으로 2016년 5월 ‘강남역 살인사건’을 꼽는다. 이 사건은 30대 남성 김성민이 강남역 인근 주점에 있는 남녀 공용 화장실에서 20대 여성 하모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사건이다.
5년 前 그 사건이 방아쇠 됐나…
여성계에서는 이를 ‘여성혐오 범죄’로 규정했다. 남성 범죄자가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대상으로 벌인 범죄였다는 것이다. “범인인 김씨가 화장실에 숨어있던 시간, 피해자 하씨보다 먼저 화장실을 방문한 6명의 남성에게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는 게 이런 주장의 근거였다.

김씨는 진술 과정에서 “여자들에게 무시당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시 여성계는 강남역 10번 출구에 “오늘도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 등의 내용을 담은 포스트잇을 붙이는 시위를 벌였다.

반면 남성들은 “‘묻지마 범죄’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김씨가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어서 벌어진 비극일 뿐, 성별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었다. 경찰도 “정신질환 범죄로 본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으나 학계에서도 의견이 엇갈릴 정도로 갈등은 봉합되지 못했다.

이후 2018년 ‘미투운동’이 터지자 남녀 간 시각차는 더욱 벌어졌다. 서지현 검사,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비서였던 김지은 씨 등이 주축이 돼 성폭력 문제를 잇따라 폭로했다. 학계·문화계·스포츠계 등의 여성들도 성폭력을 당했던 경험을 공유했다.

미투사건은 법조계가 “성범죄 사건을 심리할 때 피해자의 눈높이에서 사건을 이해해야 한다”는 이른바 ‘성인지 감수성’을 판례에 적극 도입하는 계기가 됐다. 여성계는 “증거가 잘 남지 않는 성추행·성희롱을 제대로 판단하기 위해 필요한 방편”이라며 환영했다. 이에 대해 남성들은 “여성의 진술만으로 성범죄 여부를 판단하면 무고를 당할 위험이 있다”며 반발했다.

최근엔 남녀 사이에 여성을 사회적 약자로 보는 게 맞는지를 놓고 치열한 정치적 논쟁이 펼쳐지고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당 대표는 지난 11일 전당대회에서 ‘여성 할당제 폐지’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며 남성들의 지지를 받았다. 남성들은 더 나아가 “여성 징병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펼치고 있다. 여성계는 “남녀 간 구조적 불평등을 뒤로한 채 남성들이 여성에게 부담을 지우는 방법만 논의하고 있다”며 맞서고 있다.

오현아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