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동물 부검' 제한적…美경찰, 수의법의학 적극 활용
동물학대 입증하려면…"수의법의학 활용 사체 부검해야"
동물 학대 행위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이를 입증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려면 '수의법의학'을 활용해 동물 사체를 적극적으로 부검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21일 시민단체 동물자유연대가 내놓은 '동물학대 대응 시 수의법의학의 필요성'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동물학대 사건 수사는 사진·영상 증거나 참고인 조사만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대다수다.

피해 당사자인 동물을 조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올림픽공원에서 새끼 고양이들이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 것처럼 인적이 드물거나 폐쇄회로(CC)TV가 없는 곳에서 사체가 발견되면 증거 부족으로 학대 여부를 밝히기 쉽지 않다.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동물학대 혐의로 검찰에 넘겨진 3천398명 중 정식 재판이 청구된 피의자는 2.7%(93명)에 불과했다.

반면 증거 불충분 등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은 사람은 절반을 웃도는 51.2%(1천741명)였다.

만약 동물 사체를 적극적으로 부검해 사인을 규명했다면 더욱 철저한 수사와 처벌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보고서는 전했다.

현재 국내에는 학술적·방역 목적 외에 동물학대나 기타 법적 분쟁 상황에서 동물 부검을 진행할 수 있는 체계가 없는 상황이다.

검역본부 질병진단과나 동물위생시험소, 수의대 병리실험실 등에 의뢰해 부검을 진행할 수는 있지만, 질병 감염 여부 위주로 확인할 뿐 사인 규명 단계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경찰청의 동물학대사범 수사 매뉴얼에도 부검과 관련된 지침이 없고, 일선 경찰들은 가장 큰 증거인 동물 사체를 부검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학대로 사망한 동물이 현장에 오랫동안 방치되거나 훼손돼 사진으로만 사망 경위를 추정해야 하는 사례도 잦다.

미국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동물학대범 수사와 처벌을 위해 수의법의학을 활용하고 있다.

동물 사체를 '작은 범죄현장'으로 여기며 미세증거까지 수집해 분석한다.

2014년부터는 비영리단체 미국동물학대방지협회(ASPCA)에 과학수사팀을 둬 동물학대 사건을 수사하는 뉴욕 경찰(NYPD)에 법의학적 평가를 제공한다.

이들이 작성한 조사보고서는 검찰과 법원에도 제출된다.

두 기관의 협력 첫해에만 동물학대범 체포와 동물 치료 사례가 2배가량 늘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국내에서는 아직 법적으로 지정된 수의법의학 기관은 없지만, 수의학자의 소견이 법적 효력과 증거능력을 인정받아 증거로 채택된 경우가 드물게 존재한다.

실제로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에서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관련한 동물 사망 사례에 대한 수의사의 조사 결과가 증거로 활용된 바 있다.

동물자유연대 관계자는 "수의계와 수사기관, 동물보호단체 간 협업 체계가 구축된다면 동물 학대 사건에 철저하게 대응할 수 있다"며 "전문 역량을 갖춘 수의법의학 인력을 양성하고 사건 대응체계를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