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샛 경제학

(82) 애그플레이션과 공급충격
한국은 올해 5월 유독 강수량이 이전과 비교하면 많았다고 한다. 반면 태평양 건너 미국은 대지가 쩍쩍 갈라지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특히 캘리포니아 인근은 저수지 수위가 낮아져 개인 보트들이 이동하지 못하고 갇혀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캘리포니아는 4월부터 시작된 가뭄으로 저수지나 지하수가 말라가고 있어 농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피해가 엄청나다. 이 지역 가뭄이 한국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농산물 가격이 상승하는 애그플레이션
캘리포니아는 미국 채소 생산의 3분의 1, 과일·견과류 생산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사태로 미국 내 농산물 가격이 급등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만 가뭄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남미의 브라질 또한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다. 강수량이 예년보다 크게 줄어 커피와 오렌지 등의 생산이 급감할 것으로 전망된다. 브라질은 세계 최대의 커피와 오렌지 생산국이다. 전체 커피와 오렌지의 약 30% 이상을 생산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 브라질과 같이 넓은 농토에서 농산물을 대량 생산하는 나라들이 가뭄으로 생산량이 감소한다면 어떤 현상이 발생할까? 곡물·채소·과일 등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생활필수품이기 때문에 일정량의 소비를 유지하는 특성을 가진다. 따라서 공급이 크게 줄어들어도 수요는 일정 수준을 유지하기 때문에 가격이 크게 상승하는 ‘애그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이란 농업(agriculture)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성한 용어다. 농산물 가격 상승이 전반적인 물가 상승을 일으키는 현상을 말한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공급 충격
[테샛 공부합시다] 농산물 가격 상승…스태그플레이션 심화될까?

농산물도 원자재에 속하기 때문에 농산물 가격 상승은 이를 원료로 하여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생산 비용을 상승시키게 된다. 기업은 늘어난 비용 때문에 생산을 줄이거나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반영하게 된다. 최근에 농산물 가격뿐만 아니라 구리, 철광석 등 산업에 사용되는 각종 원자재와 이를 운반하는 해운 운임비도 상승하여 ‘총공급(Aggregate Supply)’ 측면에 충격을 주고 있다. 이를 ‘공급 충격(Supply Shock)’이라고 한다. 공급 충격이란 상품이나 서비스의 급격한 공급 증가 또는 감소에 따른 가격 변화를 말한다. 이때 미국과 브라질의 가뭄은 총공급곡선이 좌측으로 이동(그림)하는 데 영향을 주어 경기가 침체되는 상황에서 물가도 동시에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을 발생시킬 수 있다. 1970년대 석유 위기 당시 원유 가격의 급등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이 세계적으로 발생하기도 했다.

한국 또한 농산물을 자급자족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농산물을 수입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나 브라질의 가뭄으로 각종 농산물 가격이 요동치게 되면 이를 원료로 수입하는 국내 기업의 생산 비용도 상승하게 된다. 생산자 수입물가의 상승은 장기적으로 소비자 물가에도 점진적으로 반영된다. 총공급 측면에서의 물가 상승이 기업 측면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 수요에도 영향을 준다.
세계적으로 풀린 유동성
하지만 최근 물가 상승 속도가 높아진 근본 원인을 살펴보자. 앞서 언급한 원자재 가격의 전반적인 상승은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 이후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이르기까지 각국이 위기가 닥칠 때마다 시중에 푼 엄청난 유동성이 제일 큰 원인으로 분석된다. 돈은 풀었지만, 경기 심리가 악화되고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실물 경제가 아닌 주식, 부동산, 원자재와 같은 자산 시장으로 유동성이 흘러가 가격만 높이고 있다. 특히 원자재의 경우 가격 상승 속도가 심상치 않다는 우려가 있다. 이에 따라 물가만 상승하고 경기는 살아나지 않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심화될 수도 있기 때문에 통화당국은 최근의 물가 상승 추이를 면밀히 관찰하며 정책 대응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정영동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원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