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숙경 軍성폭력상담소장 "사건 은폐·가해자 선처 종용 그대로"
"여군이 문제 제기하면 꼬리표…인원 적어 금방 특정"
"여군을 군인이 아니라 여자로 보는 시각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거죠. 군대에 여자가 들어와 문제가 불거진다고 보는 겁니다.

"
김숙경 군인권센터 부설 군 성폭력상담소장은 13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군 조직의 성폭력 사건 대응 문화를 두고 이같이 지적하며 "법과 제도가 아무리 잘 갖춰져도 실행하고 적용하는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최근 불거진 공군 성폭력 사건 이전에도 군에서 여군 대상 성범죄가 여러 차례 발생했지만, 문제가 불거지면 그때만 군에서 대책을 쏟아낼 뿐 근본적인 문화는 바뀌지 않았다고 했다.

문제를 제기한 피해자에게 오히려 책임을 묻고, 사건을 무마하고자 조직적으로 회유하거나 가해자를 비호하는 양상은 매번 반복된다는 게 김 소장의 지적이다.

그는 "군이 사건을 은폐하고 피해자에게 가해자 선처를 종용하는 일은 2013년 상관의 성추행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은 여군 오 대위 사건이나 최근 공군 여중사 사건에서나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상담소가 폭로한 공군 내 여군 불법 촬영 사건에서도 해당 부대 군사경찰대가 피해자들에게 오히려 "가해자가 널 좋아해서 그랬나 보지", "그런 놈 말고 나랑 놀지 그랬냐"며 가해자를 옹호하고 피해자를 성희롱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김 소장은 "피해 여군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벌어져도 '여군은 약해서 못 참아', '여군은 안 돼'라고 생각하고 가해자에 대해선 '재수 없게 걸렸다'며 동정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군 수사기관조차 이 같은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해 피해자들에게 문제의 발언들을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군대 내 '마초 문화' 탓에 상담을 요청하는 여군 중에서도 자신이 겪은 일이 부당한지조차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는 이가 적지 않다고 한다.

김 소장은 "성희롱이나 추행을 당하고도 '이게 범죄나 부당한 일이 맞냐'고 물어보는 경우도 많다"며 "군대 문화에서 이를 문제 삼으면 오히려 '사회생활 못하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탓에 묵인하고 참는 데 익숙해진 것"이라고 했다.

"여군이 문제 제기하면 꼬리표…인원 적어 금방 특정"
조직 내 급속히 퍼지는 소문과 낙인찍기도 여군의 입을 막는 요인 중 하나다.

김 소장은 "여군은 수가 적어 사건이 발생할 때 문제를 제기하면 금세 피해자로 특정돼 신분이 노출되기 쉽고, 부대를 옮긴다 해도 '쟤가 걔'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니게 된다"며 "이런 상황에서 여군은 참거나, 군 조직을 나오거나, 죽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물리적으로 군대 안에 여군이 훨씬 더 많아져야 문화도 달라질 수 있다"며 "군인들의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 전문가들이 하는 제대로 된 성교육도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여성단체 등에서 활동한 김 소장은 군인권센터에서 실행위원과 사무국장을 역임했고, 군 성폭력상담소가 설립된 2019년 5월부터 소장을 맡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