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정비 사업맡은 대한항공에 자신이 차린 회사 협력업체로 등록케 해
"정비 실무 총괄 책임자가 전문성·지위 이용해 사익 챙긴 심각한 군수비리"

해군 링스 헬기 정비사업을 맡은 대한항공에 자신의 연인 이름으로 설립한 부품중개상을 협력업체로 등록하게 해 65억원 상당의 부당 이득을 챙긴 해군 장교가 재판에 넘겨졌다.

해군의 헬기 정비 실무 총괄 책임자가 자신의 전문성과 지위를 이용해 민간 대기업으로부터 거액을 받아 챙긴 심각한 군수비리 사건이다.

수원지검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형사부(이춘 부장검사)와 국방부 검찰단 수사팀(김종일 중령)은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해군 군수사령부 수중항공관리처 소속 중령 A씨와 연인 B씨를 구속기소 했다고 9일 밝혔다.

헬기 부품중개상 차려 대한항공서 65억 챙긴 해군중령 구속기소
또 이들의 범행에 조력한 같은 부대 소속 해군 상사 C씨와 뇌물을 공여한 대한항공 임직원 3명을 각각 불구속기소 했다.

해군에서 항공기 정비관리 업무를 총괄해오던 A씨는 2016년 9월 연인인 B씨의 이름으로 부품 중개회사를 차렸다.

회사 설립 후 A씨는 2018년 2월부터 2019년 3월까지 대한항공이 맡은 해군 링스 헬기 창정비와 관련, 각종 편의 제공을 대가로 항공사 측에 자신이 차린 부품 중개회사를 협력업체로 등록하게 하고, 65억원 상당의 재생부품을 납품해 부당한 이득을 챙긴 혐의로 기소됐다.

창정비란 항공기를 완전히 분해한 후 복구하는 최상위 단계의 정비이다.

A씨는 정비사업 과정에서의 비계획작업 사후승인, 관급자재 지원 등을 결정하는 막강한 지위를 이용해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비계획작업은 사전에 계획된 작업 외에 해군 승인을 받아야 하는 정비이다.

사후승인이 내려지면 정비가 지연된 기간에 대한 지체상금이 면제된다.

1일 지체상금은 정비마다 다르지만, 수천만원에 달하기 때문에 이를 면제 받는 것은 큰 혜택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은 이런 편의를 제공받는 대신 A씨가 차린 부품 중개회사를 통해 영국의 모 회사가 공급하는 재생부품을 납품받기로 계약을 맺었다.

링스 헬기 정비에 들어가는 부품은 관급자재인 신품을 써야 하지만, 대한항공은 '신품 수급이 곤란한 경우'에 한해 재생부품 사용이 가능하다는 규정에 근거해 A씨로부터 재생부품을 납품받았다.

이전까지 링스 헬기 창정비에 재생부품이 사용된 적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헬기 부품중개상 차려 대한항공서 65억 챙긴 해군중령 구속기소
A씨는 총 65억원 상당의 계약을 통해 63억원을 수령했으며, 부품 수입 정가와의 차액 33억원 상당을 순이익으로 취득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계약 총액 65억원을 부당이득으로 기소했다.

국내 에이전시는 통상 중개 대가로 공급가의 일정 비율, 대체로 5%의 중개수수료만을 해외 공급사로부터 지급받는데, A씨의 부품 중개회사는 중개수수료 외에 별도의 차익을 얻었다.

검찰은 대한항공이 A씨의 요구에 의해 별다른 역할이 없는 A씨의 부품 중개회사를 거래 단계에 끼워 넣어 지출할 필요가 없는 33억원의 비용을 '통행세' 명목으로 지급함으로써 국가 방위비를 뇌물로 쓰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밝혔다.

재생부품 사용으로 인한 사고가 발생했다는 보고는 현재까지 들어온 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지난달 17일 민간인인 B씨를 구속했으나, 주범 A씨의 경우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이 앞서 두 차례 구속영장을 기각하고, 지난 3일에야 영장을 발부하면서 구속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항공기 정비 전문 인력이 한정돼 군 내 관리·감독이 소홀한 상황에서 외주정비 및 자재 수급 절차에 관한 전문성을 악용하고, 지위를 남용해 사익을 취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