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환기 감독 "자발적인 열정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의 이야기"

다큐멘터리 '청춘 선거'는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제주도지사 선거에서 제1야당 후보를 제치고 3위에 오르며 '녹색 바람'의 주인공이 된 녹색당과 고은영 후보를 바로 옆에서 관찰한 기록이다.

맨땅에 헤딩으로 일으킨 녹색 바람…다큐 '청춘 선거'
더 나은 세상에 대한 미련으로 무모한 도전에 나선 사람들의 발랄한 웃음과 신선한 패기는 물론, 거대 기성 정당과 유력 후보들에게 밀리고 외부인을 배척하는 제주의 '괸당'(친인척) 문화에 치이며 피해가지 못하는 내부의 논쟁과 갈등까지도 가감 없이 담겼다.

선거가 끝나고 3년이 지나는 동안 고 후보는 녹색당을 탈당하고 후원 회원이 됐고, 비례대표 2번으로 함께 했던 김기홍 씨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지만, 영화에 담긴 에너지는 그대로다.

최근 시사회 후 열린 간담회에서 민환기 감독은 "자발적이고 집단적인 열정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의 이야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고 밝혔다.

"2015∼2016년 제주에서 다른 작업을 하던 중 고 후보와 주변 젊은 친구들을 알게 됐어요.

선거에 나간다고 해서 뭐 작은 건 줄 알았는데 도지사 선거라고 하더라고요.

궁금했죠. 왜 나가지? 가능한가? 이주민들이 불가능해 보이는 변화를 만들어내는 게 제주에서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고, 제주에 대해서도 더 알 수 있을 것 같았죠."
맨땅에 헤딩으로 일으킨 녹색 바람…다큐 '청춘 선거'
영화는 30대 여성 이주민인 고 후보가 맞닥뜨리는 사회적 편견이자 제주의 견고한 장벽을 보여준다.

도지사 후보라고 소개하자마자 "완전 어린 것 같은데"라거나, 고향부터 묻고 서울 출신이라는 답에는 "뭐를 들쳐 먹으려고"라는 말들이 서슴없이 날아온다.

반면 제주에서 나고 자란 비례대표 1번 오수경 후보는 출신 동네, 아버지 성함, 남동생의 출신 고등학교 이름을 대며 그 벽을 힘들이지 않고 뛰어넘는다.

혈연과 지연을 중요시하고 그 밖의 사람들에게 선을 긋는 괸당 문화는 4·3사건이라는 제주의 역사적 비극에서 시작됐다.

고 후보는 괸당에 상처받지만, 오 후보는 소수 진보 정당의 척박한 처지를 극복하는 데 괸당을 이용한다.

하지만 "거리로 나가는 게 마냥 신나지 않다"던 고 후보는 오 후보와 괸당이고, 직접 만난 도민들과 괸당이 되어간다.

맨땅에 헤딩으로 일으킨 녹색 바람…다큐 '청춘 선거'
자신이 의도한 내러티브를 만드는 대신 바쁜 선거 후보와 운동원들을 따라다니는 감독은 괸당처럼 불편할 수도 있는 양가적 감정과 측면들을 유독 유심히 들여다본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선거 사무장 윤경미 씨는 20대부터 진보정당 운동에 뛰어들었으나 많은 실패를 겪었고 오랜 시간 정치를 떠나 있다가 다시 돌아온, 데모를 제일 좋아하는 고 후보의 든든한 조력자다.

고 후보를 따라다니는 일은 다른 촬영 감독에게 맡기고 나머지 당원들을 카메라에 담은 민 감독은 윤 사무장과 '고 후보가 떠밀려 나왔지만 좀 바뀐 것 같다', '고 후보가 밝아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눈다.

민 감독은 "나 역시 윤경미와 가까운 나이대로, 고 후보가 잘했으면 좋겠지만 의심이 있었다.

그 의심을 공유하고 싶어서 유도 질문을 던졌는데 적절한 답을 한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진보정당에 청춘을 바쳤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고, 새롭게 뛰어든 친구가 선전하는 것을 보면서 들었을 윤 사무장의 양가적이고 복잡한 감정과 생각들이 궁금했다"고 했다.

트랜스젠더인 김기홍 씨는 당의 선거 전략과 자신의 상징성의 무게를 두고 불만을 표하고 당원들과 갈등한다.

민 감독은 "고민을 좀 하기는 했지만, 돌아가시기 전 버전과 바뀐 게 없다"고 밝혔다.

그는 "김기홍 님의 역할은 어떤 면에서는 같은 팀으로서 상대하기 까다롭지만, 동시에 왜 그런 이야기들을 하는지 충분히 이해된다.

처음부터 그 양가적인 측면을 다루려고 했고, 그걸 바꾸지 않았다"고 했다.

맨땅에 헤딩으로 일으킨 녹색 바람…다큐 '청춘 선거'
신공항 전면 백지화를 내세운 고 후보와 녹색당은 선거 한 달 전 지지율 1%, 0.8%에서 선거 당일 3.5%, 4.87%라는 결실을 만들어냈다.

영화 첫 제목이었던 '반딧불'에 대해 민 감독은 "예쁘고 아름답지만 보기 힘든 게 진보정당 운동 같기도 했다"고 했다.

"결국 '청춘 선거'가 된 건 젊은 친구들의 선거이기도 하지만 윤경미의 선거라고도 생각했습니다.

몸을 늙었지만 마음은 변하지 않은 사람들의 선거이면서 동시에 육체적으로도 젊은 친구들의 선거요.

집단적인 노력이 예상치 못한 성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걸 젊은 친구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습니다.

" 6월 17일 개봉.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