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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단독 인터뷰
김동선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상무

'갑옷처럼 단단한' 말에 반해
6세 때 고삐 잡고 승마 시작
허문찬 기자

허문찬 기자

첫 만남은 여섯 살 때였다. 자신보다 서너 배는 큰 몸에 갑옷처럼 단단한 근육질. 여섯 살 꼬마는 그런 모습의 말이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안장 위에서 느끼는 말과의 교감이 좋았다. 6년 뒤인 12세, 다시 고삐를 잡았을 때 생각했다. “선수가 돼야겠다.”

그 뒤로 승마 불모지인 한국에서 숱한 기록을 남겼다. 최연소 국가대표부터 아시안게임 3연속 금메달, 인천 아시안게임 신기록까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셋째 아들로 세간에 잘 알려진 승마선수 김동선(32·사진) 얘기다.

“재벌가 아들이 무슨 승마선수냐는 시각이 있다”고 말을 건네자 단번에 “말을 탈 때가 매일 새롭다. 죽을 때까지 선수로 뛰겠다”고 답하는 그를 경기 고양시 로얄새들승마클럽에서 만났다.

김동선은 미국 유학 시절인 2001년 승마선수로 뛰기 시작했다. 고작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승마를 대중적으로 즐기는 미국 문화가 그를 선수로 이끈 토대가 됐다.

“당시 미국에선 누구나 쉽게 승마를 즐겼어요. 요즘 한국의 골프만큼 대중화돼 있었어요. 저도 어린 나이부터 승마를 즐기다 보니 자연스레 선수를 꿈꾸게 됐습니다.”

그는 2006년부터 도하·광저우·인천 아시아게임에 연달아 출전해 마장마술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손에 거머쥐었다. 2014년과 2016년에는 3대 메이저 대회인 프랑스 캉 세계선수권대회, 리옹 월드컵파이널, 리우 올림픽에 진출했다. 한국인 최초였다.

그의 주종목은 마장마술이다. 마장마술은 가로 60m, 세로 20m 마장에서 얼마나 정확하고 아름답게 말을 움직이는지 평가한다. 말을 다루는 기술과 기수의 자세가 중요하다. 남들보다 빨리 달려야 하는 경주와 다르다. 그래서 고강도 훈련으로 말을 혹사하기보다 말과의 교감이 중요하다.

“맛있는 음식을 주고 예뻐해주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에요. 말은 야성이 강하고 근육으로 덮인 동물입니다. 어쩔 땐 강제로 훈육하기도 하고 때론 양보도 하면서 말과 교감해야 하죠. 많은 훈련도 중요하지만 말과 교감하는 일이 성적 관리의 절반을 차지합니다.”

그는 승마산업 발전에도 관심이 많다. 한화그룹과 승마는 3대째 연을 맺고 있다. 할아버지인 고(故) 김종희 한화 창업주는 1964년 도쿄 올림픽 때 외국에서 말을 구해와 한국 승마 대표팀이 올림픽에 참가하도록 도왔다. 김승연 회장은 ‘갤러리아승마단’을 운영하면서 승마협회에 재정 지원을 해왔다. 그도 이달 중순 계열사인 한화호텔앤드리조트로 자리를 옮겨 승마산업 총괄과 신사업 개발 업무(상무)를 맡게 됐다.

그는 “강습 비용과 이용료 등을 고려하면 승마는 골프보다 가격도 훨씬 저렴하고, 운동 효과도 뛰어나 충분히 대중 스포츠가 될 수 있다”며 “인천아시안게임 이후 남은 승마장이나 지방자치단체 소유 승마장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남은 목표는 올림픽 메달이다. 한국 승마계에서 올림픽은 높은 벽이다. 1952년 민병선 선수가 처음 헬싱키 올림픽에 출전한 뒤 한국 선수가 메달을 딴 기록은 없다. 10위권 안에 오른 것도 1988년 서울올림픽과 2004년 아테네올림픽뿐이다. 올림픽 메달은 주로 독일 네덜란드 등 유럽 선수 몫이었다. 아시안게임과 달리 올림픽은 세계승마협회가 인정하는 대회에 출전해 입상해야 출전 자격이 주어져 출전 자체가 어렵다.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도 그가 메달을 딸 확률은 적다. 하지만 통상 승마 선수 전성기는 40대다. 런던올림픽 최고령 승마 출전선수도 당시 71세의 호케쓰 히로시(80)였다. 그는 “하루 3~4마리 말을 바꿔 타면서 훈련을 하고 있다”며 “다음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기 위해 이번 대회에서 경험을 쌓으려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물었다. 선수로서 남은 목표는 무엇인지. 그는 “죽기 전에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것”이라고 했다. 30분간의 인터뷰를 마친 그는 다시 말 한 필을 이끌고 홀로 마장으로 향했다.

양길성/최다은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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