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세스가 내게 물었다…어서와 승마는 처음이지?
‘끝이 보이지 않는 드넓은 평야. 말 위에 올라타 전속력으로 초원을 가른다. 귓가를 스치는 바람에 속도를 느낀다. 도시를 벗어나 자연 속을 누비자 해방감마저 든다. 영특한 말은 내 조그만 손짓도 알아듣고 방향을 바꾼다. 달리는 동안 말과 나는 하나가 된다. 내 키만큼 높은 말에서 능숙하게 하마(下馬)하며 질주를 마무리한다.’

이런 경험을 기대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사극 속 고구려인처럼 타는 건 당돌한 기대였다. 50분 동안 말 위에 앉아있었을 뿐인데 허벅지가 후들거렸다.
김병언 기자
김병언 기자
지난 18일 경기 고양시 ‘로얄새들승마클럽’을 찾았다. 승마의 시작은 말과의 교감이다. 기자가 이날 타게 된 말의 이름은 ‘프린세스’. 가까이서 본 말은 생각보다 거대했다. 소심하게 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인사했다. 김정연 교관은 “사람이 무서워하지 않아야 말도 긴장하지 않는다”며 “과감하게 목과 머리를 쓰다듬어줘도 좋다”고 말했다. 기자의 손길을 순하게 받아들이는 말을 보고 있자니,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가 떠올랐다.

순했지만 올라타기는 쉽지 않았다. 160㎝에 달하는 말의 등 높이는 기자의 키와 엇비슷했다. 초보자를 위한 간이 계단에 서서 왼손으로 고삐와 갈기를 단단히 잡고, 발걸이 역할을 하는 등자에 왼발을 걸었다. 도움닫기하듯 단번에 올라타는 게 요령이다.

모든 운동의 기본은 자세다. 승마에서는 더욱 중요하다. 사람 자세에 따라 말이 달리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손에 하나씩 고삐를 잡고 정면을 응시한다. 시선이 떨어지면 몸이 함께 움직이면서 말의 고삐가 당겨지거나 풀어질 수 있다. 양다리는 항아리 모양으로 말의 배를 살짝 감싼다. 가만히 서있는 말 위에서 자세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배에 힘이 들어갔다.
김병언 기자
김병언 기자
정지된 말에 앉아 있는 데 적응됐다면 이제 말이 움직일 차례다. 말마다 성격이 다르니, 움직일 때 요령도 다르다. 김 교관은 “둔한 말은 발로 박차를 가해 출발하자는 신호를 강하게 주고, 활동적인 말은 고삐를 단호하게 당겨 멈추자는 신호를 줘야 한다”며 “말도 저마다 성격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발로 배를 톡톡 치자 프린세스는 알아듣고 천천히 ‘평보’로 걷기 시작했다. 곁에서 보기에는 매우 느린 속도지만 올라타 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벌써 스릴이 느껴졌다. 속도를 올려 앉은 채 달리는 ‘좌속보’로 넘어가자 반동은 더욱 심해졌다. 다음 단계는 등자를 밟고 엉덩이를 든 채로 달리는 ‘경속보’다. 발을 디딜 땅도 없이 작은 면적의 등자에 발을 걸고 일어서려니 온 하체 근육을 다 써야 했다.

이 와중에 말은 계속 움직였다. 몸이 앞으로 쏠리며 넘어질 것 같은 느낌을 극복하고 선 채로 균형을 잡아야 한다. 교관의 구령에 맞춰 말 위에서 ‘스쿼트’를 반복했다. “하나”에 일어서고 “둘”에 앉는다. 김 교관은 “오늘 끝나고 나면 허벅지가 터질 거예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달리는 말에서 일어서고 앉기를 10분쯤 반복했을까. 이제 좀 익숙해졌는데 말에서 내리자는 말을 들으니 아쉬웠다. 땅에 발을 디디는 순간, 허벅지가 후들거렸다. 평소 운동을 게을리했던 기자는 3일이 지나도록 허벅지 안쪽이 아팠다. 운동으로 생긴 근육통이 싫지는 않았다. “승마로 뭉친 근육은 승마로 풀어야 한다”던 김 교관의 말이 떠올랐다. 각설탕을 곧잘 받아먹는 프린세스를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30번쯤 타면 사극 주인공처럼 달릴 수 있다던데…. 다시 승마장을 찾아볼까 싶다.

최예린 기자 rambut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