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근값 급등에 공급 부족, 건설 성수기에 수요 못 따라가
시멘트 공급·다른 자잿값도 불안…"시공 품질 저하 우려"
자재 수급 불안에 건설 현장 '휘청'…공사 중단·지연 속출
철강재 가격 급등과 공급 부족으로 촉발된 건설 자재 수급 불안이 공사 현장을 위협하고 있다.

20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현장에서는 제때 자재를 구하지 못해 공사가 중단되거나 공사 기간이 지연되는 사태가 잇따르고 있다.

업계는 자잿값 상승이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만약 분양가에 반영되지 못하면 시공 품질 저하와 부실시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 자잿값 급등·수급난으로 '첩첩산중'
최근 철광석 가격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철광석은 지난 12일 기준 중국 칭다오항 기준(CFR) 톤(t)당 238달러로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다.

글로벌 경기 회복에 따라 세계 각국이 대규모 인프라 투자에 나서면서 철근 수요가 급증한 데다, 중국 정부가 자국산 철강재 수출을 사실상 금지하면서 철근 품귀 현상이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연초 t당 70만원(SD400, 10㎜)이던 철근 가격은 이달 14일 기준 97만원까지 올랐다.

철근 가격이 t당 90만원을 넘어선 것은 2008년 5월 이후 13년 만이다.

급기야 지난 3월부터는 건설 자재 시장에서 철근 물량 잠김 현상이 벌어졌다.

조달청마저 철근을 구하지 못해 일부 현장에서 관급 자재 공급이 중단되기도 했다.

자재 수급 불안에 건설 현장 '휘청'…공사 중단·지연 속출
건설업계에서는 철근 t당 100만원을 넘겼던 2008년의 '악몽'이 재현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2008년에는 4대강과 보금자리주택 건설이 동시에 진행됐고, 중국 내 철근 수요 확대로 수입 물량마저 줄어들면서 국내 건설 현장이 유례없는 철근 수급 대란을 겪었다.

철근의 원재료가 되는 철스크랩(고철) 가격이 상승하면서 유관 자재인 H형강(H 모양으로 생긴 건설용 철강재)과 철재가 들어간 거푸집인 갱폼·알폼 등의 도미노 가격 상승도 이어지고 있다.

건설사 관계자는 "수급이 다급한 일부 중소형 건설사는 2분기 인상 폭을 선반영해 철근을 구매하기도 했다"면서 "무서운 속도로 치솟은 철자재 가격으로 협력사들도 비상이 걸린 상황"이라고 전했다.

철근 외 다른 건설 자잿값도 최근 큰 폭으로 상승했다.

최근 3개월 단가 변동률을 보면 화학자재(MDI) 52%, 에폭시 40%, 열연 17%, 알루미늄 13% 등 건설 자재 가격이 크게 올랐다.

철근과 함께 건설 공사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시멘트도 수급 불안 현상이 두드러진다.

생산 업체들이 탄소배출 저감을 위한 설비 개선 등에 착수하며 공장 가동을 순차적으로 멈추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시멘트 재고량은 약 120만6천t 수준이다.

그러나 작년 연말 재고량이 82만t으로 급감한 데 이어, 올해 들어 24만t까지 주저앉으며 10년 만에 최소치를 기록했다.

자재 수급 불안에 건설 현장 '휘청'…공사 중단·지연 속출
◇ 현대제철마저 가동 중단…"피해 현장 수백 곳 이를수도"
최근에는 건설 현장 자재 수급 불안의 핵심인 철근의 생산·수급에 악재가 더해졌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의 1열연공장 3호기 가열로에서 40대 근로자가 기계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고용노동부가 지난 10일부터 철근공장 가열로까지 작업을 중지시킨 것이다.

이 공장은 하루 3천500t 규모의 철근을 생산하며 국내 일일 철근 공급의 10∼15%를 차지한다.

철강 자재 수급 불안이 더욱 가중되자 국토교통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8일 건설업계와 공공 발주 기관을 불러 건설 현장의 공사 중단·지연 발생 피해에 대응하기 위한 긴급 대책 회의를 가졌다.

대한건설협회가 최근 자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3∼4월 철근·형강, 레미콘, PHC(고강도콘크리트)파일 등의 주요 건설자재 수급 불안으로 공사가 중단된 현장은 59곳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철근·형강 부족으로 중단된 사례가 43곳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공사 중단 평균 일수는 공공 현장이 22.9일, 민간 현장이 18.5일에 달했다.

협회 관계자는 "공공·민간 관계없이 철근·형강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실정"이라며 "아직 파악되지 않은 현장까지 더하면 조만간 피해 현장이 수백 곳에 이를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정부 주재로 열린 철강 수급 대책 회의에서는 유통업체들의 매점매석에 대한 단속과 대책 마련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건설업계는 제강업계의 '최적 생산, 최적 판매' 경영 전략에 따른 생산량 제한, 철강재 가격 급등에 따른 유통업체들의 사재기로 수급난이 가중한다고 지적한다.

중소건설업체의 경우 제강사와의 직거래가 아닌 유통업체를 통해 물량을 공급받고 있어 철강재 수급이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한 중형 건설사 임원은 "건설 성수기임에도 철근·형강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며 "자잿값 상승은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지는데, 만약 이런 부분들이 분양가에 반영되지 못하면 시공 품질 저하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자재 수급 불안에 건설 현장 '휘청'…공사 중단·지연 속출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