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기준 갑자기 바꿔 소급적용"
서울 중앙고·이대부고도 승소
법원, 4번 연속 학교 손 들어줘

"무리한 정책 계속 밀어붙이면
오히려 교육 불평등만 키울 것"
교육 선택권·자율권 침해 우려도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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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행정법원은 서울 중앙고·이대부고의 자율형사립고 지정 취소가 위법하다는 판결을 14일 내렸다.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행정소송 재판에서 법원이 연달아 네 번이나 학교 측 손을 들어줌에 따라 2025년까지 자사고를 폐지해 일반고로 전환하려는 교육당국의 계획에도 일단 제동이 걸린 모양새다. 교육계에서는 “정부의 무리한 자사고 폐지 추진이 부작용을 불러올 것”이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자사고 폐지 위법' 판결 줄 잇는데…"서열화 안 돼"만 외치는 정부

○“교육 불평등 되레 더 커질 것”
이번에 법원이 자사고 지정 취소에 제동을 건 가장 큰 이유는 교육당국이 평가 기준을 갑자기 바꾼 뒤 이를 소급해서 적용했기 때문이다. 교육당국은 2018년 말 자사고 평가 지표를 변경하면서 취소 기준점수를 60점 이상에서 70점 이상으로 높이고, 교육청 감사로 감점할 수 있는 점수도 확대했다. 법원은 “서울교육청이 중대하게 변경된 평가 기준을 소급 적용한 것은 입법 취지·제도의 본질에 반한다”고 밝혔다.

'자사고 폐지 위법' 판결 줄 잇는데…"서열화 안 돼"만 외치는 정부

정부는 법원 판결과 무관하게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 2025년 전국 자사고·외고·국제고를 일반고로 일괄 전환할 방침이다. 교육부는 “자사고가 설립 취지와 달리 서열화를 조장해 교육 불평등을 키우고 있기 때문에 폐지가 불가피하다”는 방침이다.

교육현장에서는 “정부 의도와 달리 자사고 폐지가 오히려 교육 불평등을 확대시킬 것”이란 우려를 내놓고 있다. “대학서열화가 유지되고 있고, 보다 나은 학교로 진학하려는 수요는 여전한 상황에서 한쪽을 누르면 다른 한쪽이 부풀어오르는 ‘풍선효과’만 불러올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신현욱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정책본부장은 “결국 서울 강남 일반고들이 자사고를 대체하게 될 것”이라며 “부모의 소득수준에 따라 학교 수준이 나뉘는 결과를 낳을 공산이 크다”고 우려했다.

“강원 횡성 민족사관고, 전북 전주 상산고 등 지방의 명문 자사고가 사라지면 서울과 지방의 교육 격차가 더 커질 것”이란 우려도 크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가장 큰 문제는 성적 상위권 학부모들의 눈높이에 맞는 일반 고등학교가 강북이나 지방에 별로 없다는 점”이라며 “좋은 고등학교를 더 많이 세우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일단 없애려고 한다는 점이 부동산 정책과 판박이”라고 말했다.
○교육 선택권과 자율권 침해
“자사고 폐지가 법률이 보장하는 교육 선택권과 자율권을 침해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자사고·국제고 등이 작년에 정부의 일괄 일반고 전환 방침에 반발해 헌법소원을 제기한 배경이기도 하다.

한 자사고 교장은 “학교 스스로 교육 과정을 설계하고 학생들의 선택폭을 넓혀주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공교육이 거꾸로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홍성대 상산고 설립자는 법정에서 “훌륭한 인재를 키우고 싶던 꿈과 자부심이 물거품이 되는 상황을 바라보며 억장이 무너진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가장 큰 문제는 ‘백년지대계’라는 교육 정책이 진영 논리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는 2010년 “학교의 자율성을 더 확대한다”며 자사고 모델을 도입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자사고 폐지를 내걸면서 자사고는 불과 10년 만에 ‘적폐’로 낙인찍혔다.

정부 성향에 따라 바뀌는 교육 정책 때문에 학생과 학부모의 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사회가 발전할수록 교육의 자율성 확대 필요성은 계속 제기될 수밖에 없다”며 “자사고·외고 등이 사회와 교육에 끼치는 장단점에 대한 면밀한 연구 없이 정부가 진영 논리에 갇혀 폐지를 밀어붙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만수/김남영 기자 ny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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