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생을 고향에서" 소망에 용인시민 합심해 건립했는데 반도체단지에 편입
준공 보름여 만에 뇌경색으로 쓰러져 4년째 병원서 투병 중

'3대(代) 독립운동가' 오희옥 지사(95)를 위해 경기 용인 시민들이 합심해 지어 드린 집이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사업 부지에 포함돼 철거될 처지에 놓였다.

2018년 3월 뇌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채 4년째 투병생활을 하는 오 지사는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현장in] '3대 독립운동가' 오희옥 지사 집 개발사업에 철거 위기
오 지사의 아들 김흥태씨는 12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용인시와 시민들이 함께 지어주신 의미 있는 집이 헐리게 됐다"며 "고향 근처에 어머니가 사실 집이 다시 마련될 수 있는지 여러 방도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힘든 치료를 받으시는 어머니가 철거된다는 사실을 모른 채 '용인집은 잘 있니?', '집에 꽃은 피었니? '라고 물어보신다"며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지 모르겠지만, 어머니가 원하는 곳에서 최대한 보살펴 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출신의 오 지사의 집안은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오 지사에 이르기까지 3대가 독립운동에 투신한 '독립운동 명문가'다.

할아버지 오인수(1867∼1935) 의병장은 1905년 한일병탄조약 체결 이후 용인과 안성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본군에게 잡혀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고, 이후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했다.

아버지 오광선(1896∼1967) 장군은 1915년 만주로 건너가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대한독립군단 중대장, 광복군 장군으로 활약했다.

어머니 정현숙 지사와 언니인 오희영 지사도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1927년 만주에서 태어난 오 지사는 언니 오희영 지사와 함께 1934년 중국 류저우(柳州)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입대해 첩보 수집을 하고 일본군 내 한국인 사병을 탈출시키는 등 광복군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오 지사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1990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수원의 보훈아파트에서 생활하던 오 지사가 2017년 2월 말 언론인터뷰를 통해 "여생을 고향에서 보내고 싶다"고 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용인시가 오 지사의 소원 이뤄주기에 나섰다.

해주 오씨 종중의 집터 기부, 공무원과 시민의 성금 모금, 용인 관내 기업들의 재능기부가 하나가 돼 2018년 3월 1일 원삼면 죽능리 527-5번지에 '독립운동가의 집'이 탄생했다.

438㎡ 대지에 방 2개와 거실, 주방을 갖춘 1층 단독주택이다.

오 지사는 수원 보훈아파트와 이 집을 오가며 행복해했다.

정부가 아닌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시민들과 함께 독립유공자를 위한 집을 마련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어서 오 지사의 집은 여러 언론에 보도되며 조명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오 지사는 용인 보금자리가 마련된 지 보름여 만에 급성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병마와 싸우고 있다.

휠체어에 탄 채 생활하는 오 지사는 식사와 말씀을 잘하지 못한 채 종이에 글을 적어 대화하고 있다.

그래도 병세가 조금 호전돼 평일에는 치료를 받고 주말에는 휴식을 취할 정도가 됐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주말마다 자녀들이 용인 집에 모셔가서 고향하늘을 보며 힐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을 터이지만, 지금은 오 지사를 뵙기조차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현장in] '3대 독립운동가' 오희옥 지사 집 개발사업에 철거 위기
오 지사가 투병생활을 하는 사이 오 지사의 집을 포함한 원삼면 지역이 SK반도체클러스터 사업부지로 확정됐다.

사업부지 지장물 조사를 거쳐 오는 10월께 보상협의가 완료되면 이후 6개월 이내에 건물 철거가 이뤄질 예정이다.

오 지사의 자녀들은 독립운동가의 집을 대체할 주택이 마련될 수 있도록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다.

SK그룹 회장 앞으로 서한을 보내 독립운동가의 집 철거 사실을 설명하고 오 지사가 마지막 삶을 보내면서 독립운동 유품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 마련을 제안했다.

그러나 SK 측으로부터 아직 답변을 받지 못했다.

용인시청에도 같은 내용의 민원을 제출하고 백군기 용인시장도 만나 도움을 요청했지만, 시에서도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는 않고 있다.

시 관계자는 "독립운동가의 집 소유자가 해주 오씨 종중이고, 주민등록상 거주자가 오 지사의 아들로 돼 있지만, 주민공람 공고 이후에 전입했기 때문에 이주자택지 공급대상에서 제외돼 오 지사 측이 보상을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오 지사의 집이 용인 전체에 의미가 큰 만큼, 사업 시행자와 협의해서 여러 대안을 찾겠다"고 덧붙였다.

[현장in] '3대 독립운동가' 오희옥 지사 집 개발사업에 철거 위기
반도체클러스터 조성사업을 시행하는 용인일반산업단지㈜ 관계자는 "오 지사 집의 의미는 잘 알고 있다"면서도 "사업부지 내 개별보상과 관련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