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소원 등 변수도…공수처 "협의체 통해 혼란 줄일 것"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검사 비위 사건 등을 이첩할 때 '수사 후 재이첩'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검찰이 그동안 반발해온 내용이 그대로 공수처 사건사무 규칙에 담겼다.

공수처는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를 막는다는 설립 취지상 공수처가 검사 사건의 기소권을 보유할 수밖에 입장이지만, 이번 규칙 제정으로 두 기관 사이의 갈등과 힘겨루기가 격화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檢반발에도 '조건부 이첩' 못박은 공수처…갈등 본격화
◇ '조건부 이첩' 등 검찰 반발 내용 고스란히
4일 공수처가 관보에 게재한 사건사무규칙 25조 2항에 따르면 공수처는 다른 수사기관에 검사·판사·경무관 이상 경찰관 사건을 이첩하며 공수처가 추가 수사 및 공소제기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수사 완료 후 이첩해줄 것을 요청할 수 있다.

지난 3월 공수처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을 수원지검에 재이첩하며 '수사 후 이첩해달라'고 요구한 데 대한 근거가 이번 규칙을 통해 마련된 셈이다.

다만 공수처는 검찰의 반발을 고려해 '이첩 요청에 응해야 한다'는 등 조건부 이첩을 강제하는 문구는 담지 않았고, 공수처 수사 여력이 없는 상황에서 제 식구 감싸기 우려가 매우 높은 사건에만 조건부 이첩을 행사하기로 했다.

공수처법 24조 1항에서 규정한 '이첩 요청권'은 수사의 진행 정도와 수사 기간, 사건의 중대성, 수사 관련 공정성 논란, 공소시효 만료 임박 여부 등을 기준으로 삼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23조 1항).
처장이 이런 고려 사항에 따라 공수처 수사가 적절하다고 판단할 경우 다른 수사기관에 '14일 이내'에 이첩해줄 것을 요청할 수 있다(23조 3항)는 규칙도 담았다.

규칙 26조에서는 '검사의 고위공직자범죄 혐의를 발견한 경우 그 수사기관의 장은 수사를 중지하고 사건을 수사처에 이첩해야 한다'며 검찰을 압박할 수 있는 단서를 명시했다.

수사 중지는 언급하지 않은 법 25조 2항보다 한발 더 나아갔다.

특히 공수처는 사건사무규칙이 독립성을 보장한다는 취지에서 공수처 규칙으로정했을 뿐 "효력은 대통령령에 준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공수처는 기존에 조건부 이첩한 사건의 경우 별도로 조치를 취하지는 않을 예정이다.

檢반발에도 '조건부 이첩' 못박은 공수처…갈등 본격화
◇ 공수처-검찰 갈등 커질 듯…"협의체로 혼란 줄일 것"
검찰이 그간 조건부 이첩과 이첩 요청권 등에 대해 줄곧 공수처와 반대되는 입장을 취해온 만큼 향후 두 기관 사이 충돌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대검찰청은 공수처가 검찰에 이첩한 사건이라면 공수처 내부 규칙만으로 기소권을 확보할 수 없다는 취지의 의견을 공수처에 전달한 바 있다.

이첩 요청권에 대해서도 '다른 수사기관이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에 착수하면 그 후엔 공수처가 이첩을 요청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냈고, 사건의 진행 정도나 공정성 논란에 대한 기준을 구체적으로 세워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실제로 이규원 전 대검찰청 검찰과거사진상조사단 검사는 최근 공수처의 재이첩 요청을 무시한 수원지검의 기소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가 심판 회부 결정을 할 경우 조건부 이첩 조항에 대한 판단이 이뤄지게 되는 셈이어서 그 결과에 따라 두 기관 간 갈등이 커질 가능성도 있다.

오는 7일 공판 준비기일을 앞둔 김 전 차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 재판에서도 조건부 이첩에 대한 논쟁이 벌어질 수 있다.

김 처장은 검찰이 재이첩 요청을 거부하고 기소할 경우 "사법부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공소 기각 등 결론이 나올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공수처는 공수처 수석부장, 대검 기획조정부장, 경찰청 수사국장이 참여하는 협의체와 공수처 수석검사, 대검 형사정책담당관, 경찰청 수사구조개혁담당관이 참여하는 실무협의체 등 2개의 협의체를 가동해 사건사무규칙에 대한 혼선을 해결하겠다는 방침이다.

공수처 관계자는 이번 규칙 제정을 통해 "사건 이첩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제고하고, 공수처가 각 수사기관이 최적의 수사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사건을 배분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