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직접 수사를 대폭 축소하고, 경찰에 상당량의 권한을 넘긴 검경 수사권 조정이 시행된 지 120일가량 지났다. 그런데도 일선 경찰서에선 여전히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경찰이 처리할 사건 수가 늘고 각종 수사 절차가 추가돼 업무는 크게 증가했다. 반면 수사에 대한 실질적 권한 확대는 아직까지 체감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수뇌부 “책임 수사”, 현장선 ‘수사 지연’

올 1월부터 시행된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은 1차 수사종결권을 갖게 됐다. 이에 따라 검찰의 지휘를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수사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가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등 6대 범죄와 경찰공무원 범죄로 축소되고, 그외 형사사건은 경찰이 맡게 되면서 수사 범위도 대폭 늘었다.

수사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내부적으로는 ‘경찰 책임수사 체제’가 도입됐다. 수사 종결 전에는 각 서(署)의 수사심사관이, 종결 후에는 시·도경찰청 책임수사지도관이 수사의 적절성을 판단하는 점검 시스템을 마련했다. 이에 더해 경찰 수사심의위원회까지 적절성을 심의하게 했다. ‘3중 심사체계’를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각종 견제 장치가 서류 작업을 늘려 수사 속도만 지연시켰다”는 불만이 나온다. 서울 일선서 간부 A씨는 “어떤 사건에서 여러 혐의 중 하나만 불송치 결정이 나도 송치와 불송치 각각에 대한 의견서를 써야 한다”며 “의견서 작성과 사건기록 복사 등 서류 작업이 대폭 늘었다”고 말했다. 강북권 경찰서의 B경정도 “수사심사관이 의견을 내는 사건이 많아졌는데, 사건 초기부터 함께하는 게 아니다 보니 서류 검토에 시간이 걸려 수사가 지연된다”며 “수사심사관이 정식 결재라인에 포함되는 것도 아니어서 갈등이 생길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이달 초 경찰 내부망에는 ‘제발 수사심사관 제도 폐지해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작성자는 “아무리 결정 단계를 늘려도 결국 검사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재수사 요청이 들어온다”며 “수사심사관이 개입하더라도 (검찰에서는) 그냥 경찰의 결정으로만 볼 뿐”이라고 불만을 드러냈다.

실무진은 ‘독립 수사’ 실감 어려워

“검찰이 과거와 마찬가지로 ‘지휘’에 준하는 영향력을 여전히 경찰 수사에 미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장청구권은 검찰이 경찰 수사에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표적 수단이다. 경찰이 구속 등 강제 수사를 하려면 검찰을 통해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검찰이 보완 수사를 요구할 수 있다.

또 경찰이 불송치 결정을 해도 검사가 사건기록을 검토해 재수사를 요청할 수 있다. 고소·고발인이 이의신청을 하면 경찰은 검찰에 의견 없이 송치해야 하기 때문에 종전과 달라진 점이 크다고 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검찰이 경찰에 보완 수사 요구를 하는 월별 건수가 연초보다 3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검찰은 올 1분기에 경찰이 송치한 13만여 건 가운데 11.3%인 1만4000여 건에 보완 수사를 요구했다. 지난 1월 2923건이던 보완 수사 요구 건수는 2월 5206건, 3월 6839건으로 매달 증가 추세를 보였다. 일선서 팀장급 경정 C씨는 “수사권 조정 이후 체감상 검찰의 보완 수사 요구가 늘어난 것이 사실”이라며 “사건을 수사하는 인력은 그대로인 반면 의견을 내고 검토하는 사람은 많아져 ‘시어머니만 늘었다’는 말도 나온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실무적으로 바뀐 제도가 안착할 때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 수사에 대한 국민적 신뢰도를 얼마나 높이느냐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최다은/최한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