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작곡가 미스터리…"광주교육청·학교, 역사 진실 규명해야"
일부 동문, 교가 원상복구 목소리도
'호남명문' 광주일고 교가 작곡가, '친일파' vs '항일운동 가문'
수십 년간 불려왔던 '호남의 명문' 광주일고 교가가 친일 논란에 휩싸여 폐기된 가운데 실제 작곡가가 누군지 정확히 확인할 수 없는 미스터리 같은 일이 발생하면서 역사적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광주일고 졸업 앨범에 등장한 두 명의 작곡가가 '친일파'와 '항일운동 가문'으로 분류되면서 이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26일 광주일고와 연합뉴스 취재에 따르면 광주시교육청과 광주일고는 지난 2019년 12월, 일고 교가가 친일파로 분류된 이흥렬이 작곡한 것으로 판단해 새 교가로 교체했다.

그러나 지난해 학교 측이 일고 교가 작곡가가 1966년 '박태현'에서 '이흥렬'로 돌연 바뀐 사실을 졸업앨범을 통해 확인했다.

일고는 1962년부터 서중 교가를 음표, 가사를 바꾸지 않고 '작사 이은상, 작곡 박태현'을 차용해왔었고, 서중 교가는 1972년 폐교될 때까지 '작사 이은상, 작곡 박태현'으로 졸업앨범에 표기함으로써 일고 교가 작곡가가 '박태현 vs 이흥렬' 구도가 된 셈이다.

서중 교가는 1953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당시 자료에는 "마침 당대의 문학가였던 노산 이은상 선생이 지방신문 사장이자 광주에 거주하고 있어 교가의 작사를 의뢰하였다.

노산은 학교 측의 제의를 흔쾌히 수락하였고…(중간생략)…하지만 작곡은 작곡자와 음악 교사 간에 의견이 맞지 않아 쉽게 결정하지 못하였고…."라고 적혀있다.

'호남명문' 광주일고 교가 작곡가, '친일파' vs '항일운동 가문'
이 자료에 따르면 작사는 이은상 선생으로 확인되지만, 작곡가는 박태현인지, 이흥렬인지 불분명한 가운데 학교와 동창회 관계자가 추가 자료를 확인할 계획이다.

1909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이흥렬은 동경대학 피아노학과를 졸업한 후 한국작곡가회 회장, 한국방송가요심의위원회 위원장, 숙명여자대학교 음악대학 학장, 한국작곡가협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섬 집 아기', '봄이 오면' 등 동요·가곡 수백 곡을 썼고, 전국적으로 수많은 교가를 작곡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제강점기 '반국가적 음악을 쫓아내고 일본음악을 수립하는 것'을 목적으로 창설된 대화악단의 지휘자로 활동하는 등 친일 행적을 보여 민족문화연구소가 발간한 친일 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렸다.

이에 따라 일부 지역에서 이흥렬이 작곡한 교가 교체작업이 이뤄졌었다.

박태현은 1907년 평양에서 태어나 평양 숭실전문대 음악학과를 졸업했다.

'3·1절 노래' '한글날 노래' '애국의 노래'를 작곡했다.

자신의 형이 매국노 이완용 저격 사건에 연루돼 옥살이하는 등 '항일운동 가문'으로 여겨진다.

일본 유학 후 귀국해 형의 죽음 소식을 들은 후부터는 조선의 민족정신에 눈뜬 채 애국가요, 국민가요, 어린이를 위한 동요 작곡 활동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자료도 있다.

서중·일고 동창회 관계자는 "광주일고 교가 실제 작곡가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만에 하나 박태현 선생이 일고 교가를 작곡했다면 얼마나 원통할 일이냐"며 "반드시 역사적 진실을 규명해야 하고, 교가를 원상 복구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광주서중은 1920년 설립된 광주고등보통학교를 모태로 1938년 세워졌고, 광주지역 중학교가 평준화되면서 1972년 폐교됐다.

1953년 설립된 광주일고와는 같은 학교 부지를 사용했고, 서중 출신 대부분이 광주일고로 진학하면서 광주고보·서중·일고 총동창회가 구성될 정도로 한뿌리로 인식하고 있다.

1929년 학생 독립운동 발원지이기도 하다.

김황식·이낙연 전 국무총리 등 다수의 정·관·재계 인사들을 배출한 호남 명문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