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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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법관 임용 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대법원은 지난주 지원자 원서 접수를 했습니다. 다음달 중순 서류심사를 거쳐 6월 실무능력평가, 법조경력‧인성역량평가 등을 진행합니다. 이어 7월 최종면접을 본 뒤 8월 법관인사위원회 최종심사, 9월 대법관회의 임명동의 절차를 거쳐 오는 10월 새 법관 임용 발표를 합니다.

이런 와중에 법원 안팎에서 “앞으로 좋은 법관을 뽑기 힘들어질 것”이라는 탄식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실력 있는 법관을 찾기가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라는 내용인데요. 바로 법관 선발 기준인 법조 경력 확대 때문입니다.

올해 임용자격의 경우 사법연수원 또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수료 또는 졸업한 뒤 판사, 검사, 변호사 등으로 5년 이상의 경력이 필요합니다. 내년부터는 경력 기준이 7년으로 늘어납니다. 2026년부터는 10년으로 상향됩니다. 갈수록 더 많은 법조경력을 요구하는 구조입니다. 이는 2011년 법원조직법 개정에 따라 최소 법조 경력을 보유해야 판사로 임용하는 ‘법조 일원화 제도’가 시행된 데 따른 것입니다.

법조 경력이 풍부한 이들을 대상으로 판사를 선발하는 것에 반대하는 이들은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경력 기준을 높였을 때 실력 있는 법조인들이 판사 임용에 지원하겠느냐 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렇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는 법조인들이 많습니다.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경력 7~10년이면 로펌에서 한창 활약할 시기”라며 “이 때 실력 있는 변호사들 중 높은 연봉을 뒤로한 채 판사의 길을 선택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로펌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이른바 ‘에이스’들은 법관의 길을 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죠. 반면, 로펌 내 경쟁에서 밀린 7~10년차 변호사들은 분위기가 다를 것입니다. 이 부장판사는 “결국 대부분의 핵심인재들은 로펌에 빼앗긴 채 그 외 법조인들로 판사 진용이 꾸려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반드시 그럴 것이라 단정 지을 순 없지만, 가능성이 없어 보이지도 않습니다.

국책 연구기관에서도 이와 비슷한 의견을 내놨습니다. 사법정책연구원이 지난달 ‘판사 임용을 위한 적정 법조 재직 연수에 대한 연구’ 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판사 임용을 위한 10년 이상 법조 경력 기준이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법조 일원화 제도 시행 이후 판사 임용 규모가 줄고 있다”며 “그 원인 중 하나가 과도한 법조 경력 기준”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실제로 2006~2012년 매년 149~175명의 판사가 임용됐지만 2013년 이후에는 매년 39~111명 수준으로 임용 규모가 줄어들었습니다. 참고로 법조 경력의 경우 2013~2017년까지는 3년 이었고 2018년부터 올해까지는 5년입니다.

이 보고서는 현직 법관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5년이 바람직한 법조 재직 연수”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최근 법원 내 분위기는 그리 밝지 않습니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거짓해명’ 논란 때문입니다. 지난 2월 김 대법원장이 국회의 임성근 부장판사 탄핵 논의를 고려해 사표를 반려한 적이 없다고 해명한 지 하루 만에 이런 내용이 담긴 녹취록이 공개됐습니다.
이를 목도한 일선 법관들 중 실망감, 수치심, 분노 등을 느낀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자존심에도 큰 상처를 받았을 겁니다. 법원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신뢰 역시 훼손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좋은 인재가 판사를 외면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최근 법조경력 연수를 재조정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법조 경력을 둘러싼 우려들이 나오고 있는 것을 감안한 것이죠. 특히 법조경력 10년에 대한 적정성 판단에 무게를 두는 것 같습니다. 미국‧영국‧독일 등 주요 선진국들이 법조 경력 3~7년을 요구하는 것도 고려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최소 경력 연수를 7년으로 통일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내년부터 7년, 2026년부터 10년으로 강화하는 방안은 그대로 두면서, 5년 경력의 법관을 별도로 선발하는 이원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법연수원 시절, ‘판사의 길’은 최상위권에게만 허락된 엘리트 코스였습니다. 법관 한 명 한 명이 헌법기관인 만큼 높은 전문성과 정확한 판단력이 요구됩니다. 인품도 갖춰야할 덕목입니다. 그래야 법원의 판결에 대해 국민들도 신뢰를 갖겠죠.

최근 법원을 우려 섞인 눈빛으로 보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 시선은 법원의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맞닿아 있습니다. 앞으로 법원이 어떻게 안팎의 문제점과 논란들을 스스로 해결해 나갈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최진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