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정 저지·반대는 헌정질서 수호를 위한 정당행위"
검찰, '계엄 위반' 이소선 여사 등 5명 직권재심 청구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이자 '노동자들의 어머니'로 불리며 41년간 노동운동에 힘써 온 고(故) 이소선 여사를 비롯한 민주화 운동가들이 신군부의 탄압으로 짓밟혔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서울북부지검 형사5부(서인선 부장검사)는 이소선 여사 등 1980년대 계엄법 위반 등의 혐의로 처벌받은 민주화운동가 5명에 대해 검사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한다고 22일 밝혔다.

검찰은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1979년 12·12 군사반란과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전후로 신군부가 저지른 일련의 행위는 헌정 질서 파괴 범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 시기 군정의 범행을 저지하거나 반대한 행위는 헌법 존립과 헌정 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행위로 범죄가 되지 않음에도 재심이 개시되지 않는 점은 정의에 어긋난다"며 청구 결정 배경을 밝혔다.

검찰은 전날 이소선 여사가 1980년 12월 6일 계엄포고 위반 혐의로 수도경비사령부 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은 사건에 대한 재심을 직권으로 청구했다.

이 여사는 같은 해 5월 4일 시국 성토 농성에 참여해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상 등에 대해 연설하고, 닷새 뒤인 9일 집회에서 "노동 3권을 보장하라, 민정을 이양하라"라는 구호를 외쳤다.

당시 군정은 이 여사가 불법집회를 했다는 이유로 구속 상태에서 조사해 징역형을 선고했으며 형 집행은 관할 사령관의 재량으로 면제했다.

검찰, '계엄 위반' 이소선 여사 등 5명 직권재심 청구
이번 재심 대상엔 군사정권에 반대하며 유인물을 배포하고 시위에 참여하는 등 학생운동에 참여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유인물을 출판해 계엄포고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은 숙명여대 학생 2명도 직권 재심 대상이다.

숙대 학생 양모·김모씨는 1980년 11월 9일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내용이 담긴 '한민족의 갱생을 위하여'라는 유인물을 사전 검열을 받지 않고 불법출판한 혐의로 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함께 재판을 받았고, 징역 1년과 선고유예를 선고받았다.

검찰은 직권 재심에 앞서 당사자나 유족의 동의를 받는다.

검찰은 양씨 본인의 동의를 구할 수 있었으나, 20대의 젊은 나이에 지병으로 이미 사망한 김씨의 기록은 찾기 어려웠다.

이에 검찰은 김씨의 관할 주소지인 상봉1동 주민센터에 도움을 요청했고 사연을 들은 김대근 주무관은 사흘에 걸쳐 지하서고와 과거 전산기록 등을 뒤져 스캔 처리된 김씨의 개인별 주민등록표를 확보했다.

검찰은 이 자료로 김씨의 유족에 연락했으며 "잊지 않고 챙겨줘 고맙다.

우리 가족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동생을 가슴에 묻은 채 지내왔다"며 재심 청구에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친구 양씨도 "김씨가 판결문에 기재된 것 외에 민주화를 위해 적극 기여한 친구다.

1986년 사망했으나 친구의 명예를 회복시켜달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외에 충남대 재학 시절인 1980년 5월 1일 친구와 함께 정부를 비판하는 시위를 해 포고령을 위반한 혐의를 받는 조모씨도 계엄고등군법회의(계엄보통군법회의의 항소심격)에서 선고유예 받은 전력에 대해 재심한다.

고등학생 시절인 1980년 6월 27일 '학생에게 드리는 글'을 사전 검열 없이 출판해 계엄법 위반 혐의로 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징역 장기 8월 단기 6월을 선고받았던 이모씨도 재심 절차를 밟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