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기가 힘들어…. 숨도 못 쉬겠어 지금.”

고(故) 곽예남 할머니 외 20인의 손해배상 소송 판결 중이던 서울중앙지방법원 558호. 법정을 나온 이용수 할머니가 숨을 몰아쉬며 이같이 말했다. 이 할머니와 활동가들은 재판부가 판결문을 다 읽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고에 앞서 재판부가 ‘국가면제 예외 사항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법리 해석을 내놨기 때문이다.

이 할머니는 말하기 힘든 듯 한숨을 쉬며 옆 사람을 붙잡고 서 있었다. 한 활동가가 가져온 휠체어에 앉은 뒤에야 “우리나라가 (어떻게) 이러냐”며 “참기가 힘들어 숨을 못 쉬겠다”고 토로했다. 이 할머니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힘들다. 도대체 이게 뭐냐”며 법정을 벗어났다. 이날 이 할머니는 기자회견을 예고했으나 재판 참석 후 취소했다. 그는 택시를 타고 귀가하기 전 기자들에게 “너무 황당하다”며 “이 재판의 결과와 상관없이 국제사법재판소(ICJ)까지 간다”고 힘줘 말했다. 이어 “피해자들이 따로가 아니다”며 “나는 모든 피해자를 위해 (위안부 피해자 손배소를) 하는 것”이라고 말한 뒤 자리를 떠났다.

이 할머니 측은 이후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1월 8일과 동일한 사실관계 피해에 대해 정반대 판결이 내려졌다”며 “선고 기일도 4개월 연기한 끝에 위안부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이는 판결”이라고 재판부를 비판했다. 위안부 피해자를 대리한 이상희 변호사는 재판 이후 기자들과 만나 “이번 재판부는 인간 존엄성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고 오로지 국익만을 위한 판결을 내렸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늘 결과로 지난 1월의 판결의 의미가 사라지진 않는다”며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재판부가 ‘국가면제 예외를 인정하기 위해 입법부와 행정부의 정책 결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판단한 데 대해 이 변호사는 “법원은 입법부와 행정부에서 보장받지 못한 분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인권의 최후의 보루”라고 반박했다.

나눔의집 등 5개 시민단체가 모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단체 네트워크’는 이날 성명서를 내고 “피해자의 재판받을 권리를 제한했을 뿐 아니라 인권 중심으로 변화해가는 국제법의 흐름을 무시한 판결”이라며 “이제 원고 중 생존자는 4명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현아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