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고대 등 대학원 신입생 정원 10% 이상 못 채워…서강대는 40% 가까이 미달
학령인구 줄어들고 '대학원 무용론' 퍼지며 인재 확보에 고군분투
재정난에 연구비 줄이고 교원도 감축…"미래 성장 기반인 R&D 황폐화 우려"
[위기의 대학]④ 대학 무너지면 '대학원'도 무너진다…'R&D 한국'에 직격탄

탐사보도팀 = "지금이야 학부생 채우는 게 문제지만 곧 대학원생 채우는 것도 문제가 될 겁니다.

대학원생 없는 교수들이 연구를 할 수 있을까요? 이대로라면 2030년 이후엔 대한민국의 연구개발(R&D)은 끝입니다.

"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대학원에 갈 학생이 줄어든다는 것은 대학 본연의 기능인 '연구'를 수행할 연구인력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비중이 세계 2위로, 과학기술력에 국가의 미래를 걸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심각한 얘기이다.

연구인력이 줄어들면 설사 관련 예산이 많다고 하더라도 과학기술 연구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고, 이는 국가경쟁력 상실로 이어진다.

우리나라의 핵심 경쟁력이 위협받고 있다는 뜻이다.

당장은 취업난으로 인해 '도피성' 대학원 진학을 택하는 학부 졸업생이 있고, 학령인구 감소 영향이 대학원에 미치기까지 시간이 남았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고 경고한다.

이대로라면 대학이 '연구'도 '취업'도 모두 놓친, 무엇 하나 경쟁력 없는 속 빈 강정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서울대 대학원도 '정원 미달'…"대학원생 확보 못 한 '노메달 교수' 속출"
"서울대 내 대학원들이 정원 채우기에 헉헉대고 있는 것은 오래된 얘기입니다.

공대 일부 학과를 제외하고는 서울대 본교 출신 대학원생 확보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 때야 학문에 대한 열정만으로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이젠 '대학원 나와봤자 인생에 도움 안 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는 거죠"
서울대의 한 50대 교수는 서울대 대학원이 직면한 현실을 이렇게 전했다.

수준 높은 인재 확보는 고사하고, 정원 채우기에 급급한 현실이 여간 안타깝지 않다고 말한다.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한 서울대의 현실은 이처럼 암담했다.

[위기의 대학]④ 대학 무너지면 '대학원'도 무너진다…'R&D 한국'에 직격탄

연합뉴스가 대학정보공시센터 공시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서울 시내 40개 일반대학원 중 신입생 정원을 모두 채우지 못한 일반대학원은 34곳에 달했다.

서울대, 고려대 등 24곳은 대학원 정원을 10% 이상 채우지 못했다.

특히 서강대 등 9곳은 정원을 30% 이상 채우지 못했다.

대입 수험생에게 인기 높은 '인서울(In Seoul) 간판도 대학원생 유치에는 무용지물이었다.

무엇보다 과학기술 분야 연구개발의 중추를 담당하는 이공계 대학원의 연구인력 부족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문대나 사회대 대학원의 경우 연구보조원 역할을 수행할 대학원생이 없어도 교수가 이를 대신할 수 있지만, 이공계의 경우 대학원생 없이는 연구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수는 "이공계 대학원의 경우 실험과 실습을 위해서는 대학원생이 꼭 필요하다"며 "숙명여대의 경우 이공계 대학원에서 대학원생이 모자라다 보니 남학생이나 동남아, 중국 등에서 온 학생들을 유치해 연구 보조로 쓰자는 얘기가 나온다"고 전했다.

숙명여대는 지난해 대학원 입학정원 532명 중 497명만 확보할 수 있었다.

올해 대학 신입생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으며 정원 미달 사태가 속출했던 지방대는 대학원생 확보가 한층 더 힘들 수밖에 없다.

한 지방국립대 교수는 대학원생 확보의 어려움으로 인해 교수들 사이에서 '노메달 교수'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본교 출신의 학부생을 대학원생으로 확보하면 '금메달', 본교 출신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지명도 있는 인근 대학 출신의 대학원생을 확보하면 '은메달'을 땄다고 한다"며 "수준이 상당히 떨어지는 대학 출신의 대학원생을 확보하면 '동메달'을 딴 거지만, 대학원생 자체를 거의 확보하지 못하면 '노메달 교수'가 된다"고 전했다.

[위기의 대학]④ 대학 무너지면 '대학원'도 무너진다…'R&D 한국'에 직격탄

매년 대학원 신입생 수가 줄어들고 있는 대구 영남대는 최근 재학생 수가 적은 대학원 학과에 향후 신입생 유치 계획과 발전방안 등에 대한 의견을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영남대 관계자는 "의견 취합이 마무리되면 본격적으로 인원 조정과 학과 간 협동과정 운영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더구나 대학원의 연구인력 부족은 수년 내 더욱 악화할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온다.

교육부는 국내 대학의 신입생 미충원 규모가 내년 8만5천여 명, 내후년 9만6천여 명 등 계속 늘어 2024년에는 12만3천여 명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학부 신입생이 이처럼 줄어들면 4년이 지난 후 대학원 신입생도 덩달아 줄고, 대학원의 연구인력 확보는 그만큼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한 서울지역 대학 교수는 "대학원은 '연구 공간'이 돼야 하지만, 정원은 있는데 신입생이 안 들어오다 보니 돈벌이를 위해 특수대학원을 만들어 학위를 남발하는 곳이 적지 않다"며 "이제는 대학은 물론 대학원의 다운사이징을 반드시 해야 하는 시점이 됐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위기의 대학]④ 대학 무너지면 '대학원'도 무너진다…'R&D 한국'에 직격탄

◇ 교수 줄이고, 연구비·실험비 깎고…대학원은 지금 '초토화' 직면
대학원의 연구기능 약화를 더욱 가속하는 것은 대학 당국의 무차별적인 비용 절감이다.

신입생 부족 사태로 극심한 재정난을 겪는 대학들은 교원 수를 대폭 줄이고, 연구비, 실험비 등도 대폭 삭감하고 있다.

'생존'이 급선무인 마당에 연구기능 약화 따위를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모습이다.

특히 정교수, 부교수 등 전임 교원과 비교해 감원이 비교적 쉬운 시간강사 등 비전임 교원은 비용 절감의 '제1 타깃'이 되고 있다.

광주대는 2018년 대학원에서 17명의 비전임 교원을 고용하고 있었지만, 지난해는 4명으로 비전임 교원 수가 2년 새 '4분의 1토막' 수준이 됐다.

학부까지 반영해도 대학교 내 전체 비전임 교원의 수가 234명에서 193명으로 줄었는데, 이들을 대신할 수 있는 전임 교원의 수마저도 소폭 감소했다.

교원 축소는 광주대만의 일이 아니다.

대학별 공시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각 대학이 고용한 비전임 교원의 숫자는 1만3천235명이었다.

2018년 1만4천332명에서 1천97명 줄어들었다.

김진균 비정규교수노조 부위원장은 "비전임 교원을 줄일수록 교수와 같은 전임 교원의 부담이 가중되고, 학생들은 그만큼 지치고 피곤한 교수를 만나게 된다"며 "이는 제대로 된 연구나 수업을 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지적했다.

[위기의 대학]④ 대학 무너지면 '대학원'도 무너진다…'R&D 한국'에 직격탄

대학원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전임 교원 또한 대학 부실화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장학금 지급과 실험 실습, 논문심사 등에 쓰이는 '연구학생경비'가 감액되는 것은 물론 전임 교원의 임금이 삭감되는 일도 속출하고 있다.

한두 대학이 아닌, 전국 곳곳의 대학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경북 김천대의 경우 전임교수를 포함한 전 교직원의 임금을 30%가량 줄이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교수들을 대상으로 명예퇴직 희망자도 받고 있다.

이 대학 관계자는 "학령인구도 줄고 대학의 장래가 밝지 않다 보니 어쩔 수 없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김제남 전국교수노조 사무처장은 "지난 수년간 대학에서 일방적으로 교수 임금을 삭감하고 연구비를 줄였다던가, 학교에서 기부금 명목으로 월급을 반강제로 공제한다든가 하는 사례들이 점점 더 많이 접수되고 있다"고 전했다.

송기창 교수는 "대학 등록금은 2009년부터 동결 상태인데 학생은 줄어 재정이 어려워지다 보니 그동안 시설관리비, 경상 운영비를 긴축하며 버티던 대학들이 이제 교육의 핵심인 실험 실습이나 학과 운영비까지 줄이고 있는 것"이라며 "연구개발의 황폐화는 이미 눈앞에 닥친 현실"이라고 말했다.

[탐사보도팀: 권선미·윤우성 기자, 정유민 인턴기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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