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개 업소·200명 넘는 여성 성매매 종사…소방도로공사 계기로 폐쇄 움직임
신축 아파트주민 집단민원·경찰단속·시 설득에 토지주·업주들 백기…"연말까지 단계적 자진폐쇄"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처럼 하늘이 잔뜩 흐린 16일 오전 경기 수원시 매산로1가 수원역 맞은편 집창촌.
2m가 될까 말까 한 좁은 골목길 한쪽에 슬레이트 지붕의 성매매업소가 죽 늘어서 있다.

서너 평 남짓의 업소 가운데 몇 군데에는 성매매 종사 여성이 나와 유리창 너머로 길가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업소 바로 코앞에는 3∼4m 높이의 공사용 천막이 쳐진 채 소방도로 개설공사를 위한 철거작업이 진행중이다.

[현장in] 60년 넘은 '도심 흉물' 수원역앞 집창촌, 올해 안에 사라져
이곳은 1960년대 초 생겨난 수원역 앞 집창촌(성매매 업소 집결지)이다.

수원역과 버스터미널이 자리 잡고 있던 고등동과 매산로1가에 매춘을 위한 판잣집이 하나씩 터를 잡으면서 집창촌으로 발전했다.

한때 서울과 천안 등 외지에서 원정매춘까지 올 정도로 붐볐지만,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와 성매매 방지 특별법 발효 이후 쇠퇴해 최근에는 2만1천567㎡ 부지에 99개 업소, 200여 명의 성매매 종사 여성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수원역 주변에 AK플라자, 롯데백화점, 노보텔 앰버서더 호텔 등이 들어서면서 집창촌 주변이 노른자위 땅이 됐다.

대낮에도 유리방 너머에 성매매 종사 여성들이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손님을 기다리는 영업행위를 하는 바람에 시민들이 일부러 멀리 돌아가야 했다.

수원역 집창촌은 오랫동안 수원의 대표적인 흉물로 지적됐다.

수원시가 2016년 2월 민간자본을 유치해 문화·커뮤니티, 공공서비스·상업·업무기능을 갖춘 복합단지로 개발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집창촌 주변 지역이 고도제한에 묶여 45m(약 아파트 14층 높이)까지밖에 개발할 수 없어 사업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민간개발자가 나서지 않았다.

이후 수원시는 개발보다는 낡고 불량한 건축물을 개량하는 도시환경정비사업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이마저도 토지주와 업주 모두 반대해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에 수원시는 2018년 8월 도시환경정비사업에서 도시계획시설사업으로 변경했다.

도시계획시설사업은 시가 도로, 공원, 주차장 등 시설을 조성하는 것을 말한다.

[현장in] 60년 넘은 '도심 흉물' 수원역앞 집창촌, 올해 안에 사라져
시는 우선 집창촌 내 폭 6m 소방도로 개설을 위해 2019년 1월 21일 수원역가로정비추진단을 신설하고, 집창촌 내 신축건물 2층을 임대해 사무실을 차렸다.

추진단 소속 공무원 7명은 매일같이 집창촌으로 출근해 "시가 우리를 쫓아내려고 우리 땅에 들어왔다"며 경계를 하던 집창촌 사람들을 만나 도로개설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업소 자진 폐쇄를 설득했다.

집창촌 내에는 남서쪽에서 북동쪽으로 폭 2m 안팎의 길(163m)이 있지만, 폭이 좁고 미로처럼 복잡해 차량이 들어서기 힘들어 주로 사람이 이용하는 통행로로 사용되고 있다.

집창촌이 생긴 이래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한 화재 사건은 없었지만, 소방차량 진입이 안 돼 늘 화재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시는 도로개설에 필요한 토지 24필지에 대한 보상을 마무리한 뒤 올 1월 석면해제 공사를 끝내고 3월부터 지장물 철거공사를 하고 있다.

보상을 통해 집창촌 내 19개 성매매 업소가 없어졌다.

소방도로 개설 공사를 계기로 철옹성 같았던 집창촌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공사 시작 이후 보상 대상이 아닌데도 5개 업소가 스스로 문을 닫고 성매매 영업을 중단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매출이 30% 가량 줄어든데다 아파트 주민과 시민단체의 민원, 경찰의 단속 등이 영업중단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집창촌 내 토지주와 건물주들은 늦어도 올 연말까지 단계적으로 자진 폐쇄하기로 최근 뜻을 모았다.

이미 몇 개 업소가 스스로 문을 닫고 포장마차 등 업종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한 건물주는 "이제는 새로운 환경변화에 맞춰 집창촌 지역을 시민에게 돌려주자, 이젠 성매매 영업을 그만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면서 "업주와 종사자들이 다른 업종을 준비하거나 이사를 완료할 수 있도록 늦어도 올 12월까지는 시간을 달라고 시에 말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찰에서는 성매매 업소들을 최대한 빨리 폐쇄하라고 요구하고 있어 집창촌이 없어지는 시기는 앞당겨질 전망이다.

[현장in] 60년 넘은 '도심 흉물' 수원역앞 집창촌, 올해 안에 사라져
수원시도 집창촌 폐쇄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집창촌 주변에 CCTV를 설치하고 2단계 소방도로개설 공사를 준비 중이다.

또 탈 성매매하는 여성 종사자에게 생계비, 주거비, 직업훈련비 등을 지원해 사회구성원으로의 복귀를 돕기로 했다.

조남철 수원역가로정비추진단장은 "집창촌 주민들을 매일 만나서 이해를 구한 것이 성매매 업소 자진 폐쇄 결정이라는 좋은 결과를 끌어낸 것 같다"면서 "도심 흉물이라는 오명을 쓴 매산로 1가 지역을 정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든 것 같아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집창촌에서 걸어서 10∼20분 거리에 있는 수원역푸르지오아파트 입주자들도 집창촌 폐쇄 소식에 환영의 입장을 나타냈다.

오는 18일까지 4천86세대가 입주하는 이 아파트 주민들은 청소년자녀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수원지역 시민단체와 연대해 집창촌 폐쇄 운동을 벌여 왔다.

함창모 입주예정자협의회장은 "집창촌을 폐쇄하기로 한 것은 아파트 주민들의 집단 민원의 성과로 볼 수 있다"면서 "시민이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는 자유를 침해하고 있는 불법 성매매 집결지는 당연히 폐쇄되어야 한다.

입주민으로서 당연히 집창촌 폐쇄를 환영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