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경력 운전사 "지리 아는 기사라면 절대 가지 않는 구간"
내비게이션 안내한 가파른 내리막 초행길 선택 안 했더라면…


제주대 입구 4중추돌 사고를 낸 H 화물운송업체 4.5t 트럭 운전자는 안전상의 이유로 사고가 발생한 도로를 주행하지 않도록 교육받았지만,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해당 도로를 주행하게 된 것으로 확인됐다.
'60여 명 사상' 제주 516도로 "빈 차로도 가지 말아야 할 곳"
9일 경찰 등에 따르면 4.5t 트럭 운전자 A씨는 다른 지역 출신으로, 사고가 발생한 도로를 처음 주행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내비게이션 안내에 따라 해당 도로로 향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지난 1월 말께부터 H 화물운송업체와 계약을 맺고 트럭을 운행하면서, 그동안 10여 차례 이상 제주에서 같은 화물트럭으로 운송작업을 해 왔다.

사고 당일 A씨는 서귀포시 안덕면에서 한라봉과 천혜향을 싣고, 평화로를 거쳐 산록도로와 어승생악, 관음사에서 516도로가 끝나는 지점을 지나 제주시 중앙로에 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종 목적지는 제주항이었다.

문제는 이번 사고가 발생한 도로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사고가 발생하면서 대형 화물트럭이 기피하는 곳이란 점이다.

제주시 중앙로는 제주대 입구 사거리에서 제주시청을 거쳐 탑동해변공연장까지 이어지는 약 8㎞ 구간의 내리막길로 최대 경사도가 7%에 이른다.

경사가 가파른 내리막길인 탓에 가속이 붙게 되지만 몸집이 큰 대형 화물트럭의 경우 이를 제어하기 쉽지 않다.

30년 경력 화물트럭 기사 박모(61)씨는 "이번 사고가 발생한 제주대 입구 사거리 인근 도로는 지리를 어느 정도 숙지하고 있는 기사라면 절대 가지 않는 구간"이라며 "빈 차로도 가지 말아야 할 곳"이라고 말했다.

A씨가 다니는 H 화물운송업체 역시 지난 7일 연합뉴스와 만난 자리에서 "안전상의 이유로 운전직원 채용 후에 항상 516도로와 1100도로를 우회하도록 교육해왔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 2017년 7월 해당 도로를 주행 중이던 화물트럭이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도로 옆 임야로 추락해 전도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또 2014년 8월 생수를 실은 화물트럭이 중앙선을 넘어 마주 오던 택시와 승용차 2대를 잇달아 들이받아 2명이 숨지고 4명이 다치는 사고도 있었다.

당시 사고를 낸 운전자들은 경찰 조사에서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았다"고 공통으로 진술한 바 있다.

2017년과 2014년 발생한 사고는 브레이크 과열에 따른 '패이드(내리막길에서 연속적인 브레이크 사용으로 인한 제동력 상실)' 현상으로 발생했던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지난 6일 발생한 사고 당시 폐쇄회로(CC)TV를 보면, A씨가 몰던 화물트럭 역시 브레이크 이상으로 보이는 정황이 몇몇 발견된다.

A씨는 빠른 속도로 중앙로 초입에 있는 제주대 앞 사거리로 진입한 뒤 3차로에 버스가 정차 중인 상황이었지만 속도를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달렸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현재 사고 원인을 브레이크 과열에 따른 페이드 현상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추정"이라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식 결과와 H 업체 등을 상대로 트럭 브레이크 고장 시점과 원인 등에 대해서도 확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6일 오후 5시 59분께 제주대 입구 사거리에서 4.5t 트럭이 다른 1t 트럭과 버스 2대를 추돌했다.

이 사고로 3명이 숨지고 59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A씨는 앞서가던 트럭과 버스 2대를 추돌해 인명피해를 발생시킨 혐의(교통사고 처리 특례법상 과실치사 및 과실치상)로 이날 구속됐다.

dragon.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