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4 조치로 대북송금 금지로 53억원 못받아"
법원 "北기업 낸 소송, 南법원서 재판할 권한 있어"
"물품대금 달라" 北기업, 국내기업 상대 소송 패소(종합2보)
북한 기업이 국내 기업과 거래하는 과정에서 물품 대금을 받지 못했다며 한국 법원에 소송을 냈으나 1심에서 패소했다.

법원은 북한 기업과 국내 기업 사이 소송을 판단할 권한이 국내 법원에 있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7단독 김춘수 부장판사는 6일 북한 경제단체 조선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과 명지총회사, 남북경제협력연구소 김한신 소장이 한국 기업 4곳을 상대로 제기한 물품 대금 청구 소송을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북한 기업이 원고 자격으로 한국 법원에 소송을 낸 사건은 이번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우선 "남북한이 국제연합(UN)에 동시 가입했으나 서로 국가로 승인하지 않았고 남북 교역이 국가 간 무역이 아닌 민족 내부 교역으로 특별한 취급을 받는 사정을 고려할 때 북한을 독립한 외국으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남북한 사이 법률관계는 국제사법의 규정을 유추 적용해 재판관할권을 정할 수 있다"며 "원고와 피고 사이 계약서가 있고 소송에 필요한 증거들이 대한민국에도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한국 법원이 재판 관할권을 가진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증거와 변론 취지에 인정할 수 있는 사실들에 비춰보면 명지총회사가 피고 회사들과 계약을 맺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재판부는 아울러 "증거와 변론에 비춰보면 오히려 제3의 회사가 명지총회사 또는 다른 북한 기업으로부터 아연을 매수해 피고 회사들에 매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민경련에 가입한 기업 명지총회사는 지난 2010년 아연을 국내 기업들에 공급했으나 이후 5·24 조치로 대북 송금이 금지되면서 전체 대금 중 474만3천여달러(약 53억원)를 받지 못했다며 2019년 물품 대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반면 국내 기업들은 이미 거래를 중개한 중국 기업에 대금을 모두 납부했다는 입장이다.

5·24 조치는 2010년 천안함 사태에 대한 대응으로 정부가 내놓은 대북 제재로, 남북 간 교역 중단과 대북 지원 차단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민경련과 명지총회사의 위임을 받아 공동 원고 자격으로 소송을 진행한 김 소장은 "5·24 조치가 시행된 이후 12년째 기업들이 고통받고 있는 가운데 해결되지 못한 문제를 법정에 제기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 들어서 10년 동안 중단됐던 북한과의 접촉이 개시되면서 북측에서 소송을 위임했다"고 소송을 진행하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이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자료를 충분히 제출하지 못해 패소했는데, 변호사와 상의해서 항소하겠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