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총액 1조3000억원대 기업의 회장이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지난 2월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구속기소된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이다. 최 회장이 과거 몸담았던 SKC는 지난달 5일부터 22일까지 주식 거래가 정지되기도 했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자신이 투자한 기업 회장의 정확한 공소사실에 대해 아직 ‘깜깜이’ 상태다. 지난해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때부터 도입된 공소장 비공개 원칙 때문이다.

과거엔 피의자가 재판에 넘겨져 피고인이 되면 공소사실이 적힌 공소장은 국회의 자료 제출 요구 절차에 따라 전문이 공개돼왔다. 작년 2월 여권에 민감한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때 공소장 비공개 원칙이 도입되기 전까진 그랬다.

법무부가 국회 요청에도 불구하고 공소장을 공개하지 않기로 한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었다. 그러니 일각에선 “청와대 핵심 관계자의 선거 개입 정황이 공소장에 상세히 적혀 있기 때문에 비공개 결정을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켕기는 게 있어 그런 것 아니냐는 비판이었다. 법무부는 이를 깡그리 무시하고 첫 공식 재판이 있기 전까지는 공소장을 공개할 수 없다는 의견을 여태껏 고수하고 있다.

최 회장의 첫 공판기일은 오는 22일로 예정돼 있다. 아직 공판준비기일만 진행됐을 뿐 정식 공판기일은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투자자가 접할 수 있는 정보는 언론 보도와 단편적 공시 정보 등이 전부다.

이 재판으로 기업 가치는 어떤 영향을 받을지, 내가 투자한 기업 회장이 정확히 무슨 일 때문에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지, 해당 혐의에는 어떤 기업이 또 연루돼 있으며 무슨 상황에 얽혀 있는 것인지 의문이 꼬리를 물지만 투자자들이 할 수 있는 건 첫 재판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그나마 최 회장 사건을 맡은 재판부가 사건을 속전속결로 끝내겠다는 뜻을 밝혀 공식재판이 이달 안에 잡힌 게 다행이라면 다행인 일이다.

더 큰 문제는 해당 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운 ‘개미 투자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 간의 정보 격차가 더 벌어질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권력자들이야 사적 네트워크를 동원해 공소장 내용을 알아볼 수 있겠지만, 개미들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그나마 큰 기업은 언론이 어떻게든 취재하겠지만 작은 기업에 투자한 개미들은 더 답답할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한 회사 회장 구속·거래정지 당해도…공소장 왜 못 보나요 '깜깜이' 답답한 개미들
혐의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공소장 공개는 재판을 받는 당사자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공식 기소된 뒤 공개되던 관행을 무리하게 깨면서까지 도입된 공소장 비공개 원칙이 권력자와 그렇지 않은 소액투자자의 정보 격차만 벌린다면 누구를 위한 원칙인지 의문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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